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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클레어 Aug 28. 2024

아무것도 모르는데 엄마가 됐습니다

모성애가 바로 생기지 않던데요

아이가 태어났다. 

10개월을 기다렸던 소중한 아이인데 벅찬 감동보단 이상하고 낯선 기분이 들었다.

‘제왕절개는 자연분만보다 감동이 덜한 건가? 나도 진통을 하다가 제왕절개를 한 것뿐인데 왜지?’

“산모님. 아이예요. 마취 들어가기 전에 인사하세요.”라는 간호사 선생님이 이야기에 나는 어색하게 “아… 안녕”이라는 인사만 했다.

더 감동스러운 말은 생각나지 않았다.


임신기간 동안 아이가 태어나면 어떤 말을 처음으로 건네는 게 좋을지 고민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그냥 벅차서 눈물이 펑펑 나지 않을까? 그리고 “사랑해”라고 건네겠지.’ 막연하게 생각했다.

첫 단추를 잘 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난 그 중요한 첫 만남을 망쳤다.

엄마가 될 내가 아기와의 첫인사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니 아기와의 첫 만남을 망친 것도 이해된다.

나의 첫인사는 펑펑 울면서 “태어나줘서 고마워 “ 혹은 ”아기야~사랑해”대신 “아.. 안녕”이라고 어색한 인사가 전부였다.

어색한 내 인사에 당황한 간호사가 “산모님. 더 하실 말씀 없으세요? 그게 다예요?”라고 묻는 간호사에게 “네,,”라고 대답했지만 속마음은 “낯선 사람에게 제가 어떤 말을 해야 하냐고요! 아기가 태어났는데 전 어리둥절해요! 낯설고 어색하고 그렇다고요!”라고 외치고 싶었다.


출산 전까지 난 아기가 태어나면 히어로 영화에서 히어로가 짠하고 나타나듯 모성애가 짠하고 튀어나올 줄 알았다.

‘유전자는 들어라! 아기가 태어났다! 모성애 유전자 튀어나오도록’ 이렇게 몸 어딘가에 있는 모성애 유전자를 내보내줄 것이라 생각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여자는 모성애가 저절로 생긴가 “라는 사회적 통념을 누구나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들었고 그렇다고 믿었다.

그러다 보니 ‘아기가 태어났는데 왜 눈물이 나지 않는 거지? 나 감정을 못 느끼는 소시오패스 아니야? 아니면 진통할 때 너무 아파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닐까? 전두엽이 손상될 수도 있잖아!‘라고 스스로를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모성애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오만가지 생각이 났다.

‘모성에 대한 포장은 거짓말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생각했다.

솔직하게 난 큰 감동보다는 막 태어난 아기가 낯설었고, 감동보다는 수술실의 차가운 공기가 더 크게 느껴졌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그럼 아기가 싫었던 거냐고? 절대 절대 절대 아니다. 너무너무 소중하고 감사했다.

난 유산 증상을 보이자마자 회사를 그만두었고, 갑자기 쓰러지는 증상 때문에 최소한의 외출만 했다. 음식도 내가 좋아하는 맵고 짠 음식보단 태아에게 좋다는 음식만 골라 먹었다.

엄마가 공부를 하면 아기에게 도움이 된다길래 학창 시절 열심히 하지 않았던 공부도 했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웃기다. 산모가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아기의 아이큐가 좋아진다는 그런 낭설을 그땐 굳게 믿었다.)

어지럽고 구역질 나는 입덧도 엄마가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고 변화하는 몸이 싫었지만 받아들였다.

이것들이 날 모성애가 가득한 엄마로 만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출산 후 현실은? 달랐다.


예정일보다 3주 빠른 9개월 1주 만에 나온 아기를 보고 엄청난 모성애와 큰 감동이 밀려올 줄 알았다. 그런데 낯선 감정이 날 뒤덮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간호사가 산모에게 아기를 보여주며 “산모님~아기예요. 건강해요.”라고 이야기하면 산모는 눈물을 흘리며 “사랑해. 고마워”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는가.

나도 그럴 줄 알았다. 당연히 눈물을 흘리며 엄청나게 감동스러운 이야기를 할 줄 알았다.


하지만 난 극 I의 인간이다. 어렸을 때부터 낯을 심하게 가려서 새 학기, 새 친구, 새 회사 등등을 힘들어했다. 전형적인 내향형 인간이다.

사춘기 때는 낯가리는 내가 싫어 바뀌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물론 처참하게 실패했다. 결국 난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 것보다 다시 태어나는 게 더 빠르겠다는 결론을 내렸고 내 성향을 받아들였다. (이 정도로 낯가리는 내가 남자를 만나 결혼한 것도 대단한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인간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기에 아기가 태어났다고 갑자기 180도 바뀌지 않는다.

30년을 낯가리는 극 I형 인간으로 살았는데 새로운 생명체가 나타났으니 낯설어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내 감정이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걸 몰랐다.

내가 아무리 낯가리는 인간이지만 9개월 1주를 품은 내 아기에게도 낯가리며 어색해할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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