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한 딸내미를 낳아버렸다.
전화통화 오래하는 엄마가, 전화통화를 싫어하는 그녀를 키우며.
아이의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가 왔다는 흔적이 남아있었다. 호기심에 누가 전화했었나 살펴보니 아이의 반 친구가 전화를 했는데 받지 못했던 모양이다. 후에 들어보니, 학교 계단에서 같이 뛰어가다 딸아이가 아프게 넘어졌다는데 다친 데는 괜찮은지 안부를 묻는 전화를 했다고 했다. ‘응, 괜찮아 내일 보자.’ 걱정하는 친구의 메시지에 딸은 단순 명료한 답을 내어놓았다. 나 같으면 걱정해 줘서 고맙다는 둥, 잘 자라는 둥, 주저리 주라지 이런저런 미사여구를 메시지에 늘어놓았을 텐데...... 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꼭 해야 할 말만 하고 통화를 짧게 마무리하는 딸아이의 행동이 문득 궁금해서 질문한 적이 있다.
“딸, 넌 왜 통화를 그렇게 간단하게 끝내?”
“아... 제가 통화 길게 하는 걸 싫어해서요, 저는 전화로 길게 말하는 게 귀찮거든요.”
다정한 말투로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는 걸 좋아하는 나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연락을 잘하는 성향을 지닌 사람과, 연락하는 것 자체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로 나뉘던데 딸아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 쪽이었다.
‘어쩌지...? 딸이라고는 달랑 한 명 있는데 나중에 내가 안부전화도 먼저 하고 궁금한 걸 물어보면 되게 귀찮아하겠네? 하필 왜 저런 성격인 거야? 나 나중에 상처받을 거 같아.’ 어느새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흠씬 두드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친한 주변 지인들 중 연락하는 걸 귀찮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먼저 통화 버튼을 눌러 관계를 이어가곤 하는데, 딸아이에게도 그리 하며 살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사근사근 상냥하게 딸이 먼저 내게 전화를 해 나의 안부를 물어봐주고 같이 쫑알쫑알 이것저것 사는 얘기를 나누고 싶은 나의 욕심이 발동한 것이니라...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실컷 상상해 놓고 나서는 주섬주섬 다시 정신을 차렸다. 흰 도화지에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는 딸내미에게 묻는다.
“딸, 나중에 엄마가 전화하고 그러면 우리 딸 귀찮아서 전화 빨리 끊고 그러는 거 아냐? 그러면 엄마 되게 서운할 것 같아.”
딸은 대수롭지 않은 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네.”
쿵....
또 나 혼자 심각해졌다. (호불호가 강한 성격의 딸은 대답도 예, 아니오로 시원시원하게 하는 편이다.좀 있다가 엄마전화는 오래 받을거라고 말을 바꿔주긴 했다.)
아이에게 밥을 해 먹이고 따뜻한 옷을 입히면서 내가 이 아이에게 바라는 게 이렇게 세세하게 많았던가? 머릿속 계산기를 접어 고이 넣어두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림 그리기에 열중한 아이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아이의 얼굴엔 ‘어릴 적 나’도 있고, ‘구름’도 있고 ‘달콤한 사탕 하나’도 어려 있었다.
그래, 지금의 말랑말랑 보송보송한 너만 바라볼게, 다른 건 생각하지 않을게.
그저 사랑만 줄게.
사랑해 시크한 딸내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