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개근'이 불명예가 되었는가?
"엄마, 내 친구 나연이는 태국에 갔대요, 그것도 엄청 오래갔다 온대요."
학교에 갔다온 딸 아이는 요즘 친구들이 여행을 많이 간다고 말했다. 언제나 그 이야기의 끝은 "우리는 언제 여행가요? 저도 여행가고 싶어요."였다. 얼마 전에 인터넷 신문 기사를 둘러보다 다소 충격적인 기사를 접했다. 바로 '개근거지'라는 신조어였다.
코로나19 완화로 해외여행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른바 '개근거지' 등의 혐오 표현이 교실 내에서 확산하고 있다. 과거 학교생활의 성실 지표였던 '개근'이 아이들의 가정형편을 판가름하는 혐오 표현으로 자리 잡으면서 학부모들의 근심도 깊어지고 있다.
출처 : 대전일보(http://www.daejonilbo.com)
어쩌다 '성실'한 태도의 상징이었던 '개근'이라는 단어는 '거지'라는 말과 결합하게 되었을까? 가족동반 여행을 결석으로 인정하지 않고 출석으로 인정해주는 출석제도의 변경이 시행되면서 평일에 가족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여행에는 '경비'가 소모되므로 아무래도 형편이 그나마 넉넉한 아이들이 자주 이 제도를 활용했으니 반대로 매일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은 자신들이 공부할때 여행을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웠을것이다. 여행다녀온 친구들은 어디어디가 좋았더라 하면서 자랑을 할 것이고, 여행을 자주 갈 수 없어 학교에 나오는 아이들이 오히려 소외당하는 기이한 풍경이 교실에서 꽤 자주 펼쳐졌을 것이다. 또래가 하고 있는 건 같이 하고 싶고 친구들과 동질감을 느끼고 그 무리속에 소속감을 중시하는 시기적 특성을 고려해도 아이들은 몹시 그 상황이 불편했을 것이다.
가족간의 여행이 그리 흔하지 않았고 여행을 간다고 해도 주말에 가야만 했으며 절대 학교는 빠질 수 없다는 무언의 약속을 굳건히 지켰던 부모세대들의 뒤늦은 반란인걸까? 아마도 집집마다 내 아이만은 최고로 키우고 싶다는 굳건한 소망이 담긴 위시리스트에는 어쩌면 이런 '여행'도 꼭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위시리스트에 있는 그 여행의 성질은 결코 내 아이가 남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가 아닌, 그저 아직 어린 아이들과 부모와의 평생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을 남기기 위한 순수한 목적만을 지녔으면 좋겠다.
여행을 가는 건 '자유'다. 여행을 자주 가는 것도 '자유'다. 그렇다고 해서 여행을 못가는 친구들에게 '개근거지'라고 부르는 건 자유를 넘어선 '방종'이다. 여행을 다녀오지 않아 교실에 매 번 앉아있다고 해서 그들에게 이런 낙인을 찍는건 자신들이 여행다닐 자유를 누리며 남에게 나와 같지 않다고 피해를 주는 것과 같다.
바야흐로, 무엇을 하던지 안하던지 혐오의 표적이 되는 시대이다.
아무리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지만, '그' 또한 '그녀'는 나와 다를 뿐이지 나와 다르게 행동한다고 해서 그들의 행동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오늘 부터 내 아이에게 가르쳐야 겠다고 마음먹었다. 여행을 누구나 가면 좋지만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여행을 여러가지 사정상 못 갈 수 도 있다고, 그러니 그것만 가지고 소중한 친구들을 판가름하지 말라고...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고....나와 달라도 그 사람이 틀린 건 아니라고 말이다.
우리 삶은 쇼가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이 아닙니다.
소 열마리 가진 사람은 한 마리 가진 사람의 마음올 살고,
소 백마리 가진 사람은 열 마리 가진 사람의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삶입니다.
자신이 처한 삶을 있는 그대로, 꾸지미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사는 것이 진정한 삶입니다.
내실을 기하는 진정한 삶.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손웅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