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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Nov 03. 2022

안동맛집? 도산서원 앞에 가서 물어보세요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청송 한달살기 집을 3일간 빌려주기로 했다. 단풍철이라 청송 주왕산 일대로 놀러 오기로 한 지인들에게 집을 빌려주고 우리는 2박 3일간 영주와 안동 여행을 가기로 했다. '여행 in 여행'이다. 둘째 날 숙소인 안동의 농암종택에 들어가니 4시가 좀 넘었다. 경치도 좋지만 부슬부슬 비 뿌리는 해거름에 인적 드문 산자락에 들어니 어둠 빨리 내렸다. 이른 저녁을 먹기로 하고 차를 몰아 식당을 찾아 나섰다.


경치가 끝내주게 좋았던 농암종택 방 창문을 열고... 그러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숙소에서 도산서원까지 내려가는 도중 도로변에 식당이 한 곳도 없었다. 산 깊고  맑은 한옥 스테이도 좋지만 이러다가 저녁 굶겠다 싶었다. 결국 도산서원 앞차를 세우고 편의점에 들러 컵라면 2개와 구운 달걀 3개를 저녁 요기거리로 샀다. 날은 일요일, 때는 오후 4시 반이었다.


결제하면서 편의점 주인과 몇 마디 주고받았다.

주인 : "농암종택에서 오셨나 봐요."

나    : "아, 예.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주인 : "그 근처에 식당이 없다 보니 숙박객들이 우리 가게까지 오셔서 먹을 것 사가시더군요."

나    : "안 그래도 식당 찾 여기까지 왔어요."

주인 : "그래요? 식사를 못하셔서 어쩌나? 인근 온혜리에 가면 식사할 수 있는 곳 있요.

          몽실식당에 전화해보세요."


지도 앱을 찾아 전화를 하니 몽실식당은 '없는 번호'라고 나왔다. 가게 주인이 "그럼 예끼마을의 00식당으로 전화해보세요."라고 한다. 이번에는 일요일이라 영업하지 않는다고 했다. 가게 주인이 또 다른 식당을 불러주고 전화 걸기가 일곱 군데쯤 반복되었다.


처음에는 가게 주인과 '식당 이름 대기 게임'이라도 하는 양 재밌었는데 전화 거는 곳마다 '4시까지만 영업한다, 재료가 다 떨어져 손님 안 받는다' 류의 대답만 하니 황당하다 못해 심각해졌다. 우리 부부에게 '안 팔기'로 안동 동네 식당이 동맹이라도 하지 않고서야 어찌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일요일 저녁 5시도 안 되었는데 사 먹을 곳이 없었다. 숙소 가서 컵라면이나 먹어야겠다며 가게를 나서는데 어디론가 전화를 하던 편의점 주인이 "지금 빨리 몽실식당에 보세요. 방금 통화됐장사는 끝났지만 사람 밥은 차릴 있대요." 도산서원에서 차로 5분 거리란다. 컵라면이 될 뻔한 저녁 메뉴가 '생나물 비빕밥과 된장찌개, 코다리조림, 달걀프라이'로 변했다. 편의점 주인과 몽실식당의 합작이 '밥 안 팔기로 안동 식당 동맹'을 뚫고 우리에게 성공적으로 밥을 먹인 것이다.


도산면 온혜리 시골 식당의 반전, 밥 주는 것만도 감사한데 맛도 있어요.


다음날 도산서원을 구경하고 난 후 편의점에 들러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마침 무섬마을 앞 생강밭에서 산 햇생강이 있어 나눠 드리고 안동소주 선물세트도 샀다. 알고 보니 주인은 내가 쓴 앱이 아닌 다른 지도 앱을 사용해 몽실식당과 통화가 되었고 식사 예약을 대신해 주신 것이었다. 일면식도 없는 관광객을 돕고자 한 그녀의 진심이 너무 고마웠다. 최근 여행에서 만난 가장 기억에 남는 오지라퍼다.


도산서원


햇생강를 감사의 표시로


내가 쓰면서도 '오지라퍼'란 말이 국어사전에 있는가 싶어 찾아보았다.

· 오지랖 :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 이런저런 일에 관심과 참견이 많은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기도 함.
· 오지라퍼 : 오지랖이 넓은 사람. 남의 일에 지나치게 상관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여행길에서 만난 오지라퍼들이 떠올랐다. 제주의 한경면에서는 공항 가는 길을 묻자 비행기 시간 못 맞출 거라면서 우리를 공항버스 타는 곳까지 자신의 승용차로 데려다 주신 노부부를 만난 적이 있었다. 강원도 고성에서는 마차진 해변 버스정류장에 앉아있던 우리에게, 길가던 분이 "여기는 버스가 잘 안 다녀요. 저기 금강산 콘도 아래쪽 버스가 회차하는 곳에 가서 기다리세요."라고 알려주고 가셨다.


오지라퍼들은 때로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먼저 다가와 상관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기대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주어 놀람과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다. 긍정 오지랖은 전염성이 있다. 몽실식당 주인에게 지도 앱의 식당 전화번호를 확인해보라고 전화를 드려야겠다.


그날 편의점을 나서다가 말고, 주인에게 '안동선비순례길'을 걸으러 가는 참인데 식사를 어디서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았다. 한 번 해결사는 영원한 해결사다. '도산서원 해설사분들이 많이 가는 식당'이라면서 예끼마을의 밥집 두 군데를 비교·추천해주시며 골라 가라고 하셨다. 또 국수 식당도 따로 알려주셨다. 추천해주신 식당은 깨끗했고 값도 맛도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식당 검색 안 돌리고 평점 조사 없이, 믿고 먹는 여유로움이라니... 이게 바로 현지인 정보의 위력이지!


안동선비순례길의 민속식당, 안동에서 먹은 최고의 간고등어정식


편의점 주인의 정체는 뭘까? 혹시, 안동맛집 암행홍보대사? 그 많은 식당 이름을 줄줄이 꿰고 있는 것도 수상하고 메뉴별 맞춤 추천까지 가능하니 더더욱 수상하다. 안동여행 가시는 분들, 안동맛집은 도산서원 앞에 가서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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