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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Nov 06. 2022

게스트하우스에서 한달살기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꼬박 4시간을 달려 목포에 왔다. 오늘 묵을 곳은 유달산 중턱에 위치한 원도심의 게스트하우스다. 숙소는 목포역에서 가까운 오래된 주택가에 있었고 주변 좁은 골목 사이에 작은 게스트하우스들이 꽤 보였다.


명색이 난 한달살러. 한달살기 여행의 시작은 집 구하기다. 공인 중개소를 거치지 않고 다세대주택에 붙은 전화번호로 주인과의 직거래를 시도해보았다. 두 군데쯤 전화했는데 한 곳은 '한 달 월세는 아예 취급하지 않는다'라고 했고 다른 곳은 '투룸이 만실'이라고 했다. 날도 흐린 해거름에 노적봉 자락에서 찬바람 맞으며 퇴짜 전화까지 받으니 이거야말로 타격감 제대로의 '이중 바람맞기'였다. 집 나설 때의 호기로움은 급 추락하고 소심해졌다.


부동산 중개소를 가려면 차를 몰고 현지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로 가야한다. 보나 마나 "한 달은 취급 안 해요." 거절이 이어질 것이고 어렵사리 구해봤자 그렇고 그런 다세대 주택이겠지. 한달살기 9개월 차라 이제 그림이 그려진다. 직전 여행지인 부산과 청송에서 독채로 지내다가 다시 원룸살이나 다름없는 생활로 돌아가려니 서글픔이 앞섰다.


차라리, 게스트하우스 장기 숙박을 알아볼까? 아닌게 아니라 오늘 묵는 숙소는 예약 사이트의 사진보다 훨씬 좋아 놀랐다. 깨끗하고 볕 잘 들고 인테리어가 세련된 신축 건물이었다. 방은 하나지만 대신 테라스 딸린 공용 주방이 바로 옆에 있다. 테라스에 서니 목포의 구도심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이 정도 전망의 테라스라면 ' 한 개짜리 한 달'도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일 이 전망을 보면서 아침을 먹을 수 있단 말이지!' 멕시코 과나후아토에서 묵었던 전망 좋은 언덕배기 게스트하우스가 떠올라 더더욱 마음을 뺏겼다.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더 탐문해봐도 이곳만 못했다. 마침 장기 숙박이 가능하다고 했다. 문제는 토요일 세 번 방을 비워줘야 한다는 조건. 한 달짜리 내 집에서 토요일마다 쫓겨나는 셈이다. 숙소 측에서 토요일은 이미 예약 만실이라 어쩔 수 없다고 했고 우리도 핑계 삼아 주말마다 진도나 해남으로 놀러 가서 자고 와도 되겠다 싶어 수락했다.


이렇게 해서 '게스트하우스에서 한달살기'가 시작되었다. 게스트하우스를 넓은 범위로 호텔에 넣는다면 한 달 지낼 집도 호텔이요, 주말마다 새 호텔이니 이게 바로 '호텔에서 한달살기' 아닌가? 청소 안 해도 되고 쓰레기 안 내다 버려도 되고 날마다 깨끗한 수건과 생수도 공급받는다. 매일매일 누군가가 세팅해준 쾌적한 잠자리에서 쉬기만 하면 되는 거다.


집을 구했다는 안도감은 잠시, 짐을 들고 막상 방에 들어서니 내가 '전망 좋은 테라스'에 낚여 무슨 짓을 했나 싶었다. '아니, 이런 단칸방에 남편과 한 달을 지내라고? OMG~' '호텔에서 한달살기'의 실체는 '단칸방살이'였다! 물리적 공간 분리가 안 되는 건 우리 같은 장기여행자 커플, 아니 '우리'에게 최악이다.


지금까지 한달살기 거처를 여덟 군데나 돌아다니면서 가장 우선시한 주거 조건이 '공간적으로 어느 정도 분리 가능한 투룸'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왜 망각했을까. 후회해봤자 이미 송금한 돈을 되돌릴 수도 없다.


한 달을 무사히 지내기 위해 몇 가지 다짐과 대책을 세웠다.

1) 절대로, 아니 현실적 목표로, 가급적 다투지 않는다. - 서로 얼굴 붉히는 상황이 오면 피차 갈 곳이 없음.
2) 주방을 최대한 활용한다. 저녁 식사 후 한 사람은 주방에서, 한 사람은 방에서 개인 활동을 한다.
3) 숙소 바로 앞 카페를 자주 이용한다. 카페를 좋아하는 남편을 카페로 보낸다.


특급호텔 한달살기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특급호텔은 주방이 없을 테니까, 도피처가 없으니까.  


작가 헤밍웨이는 쿠바 아바나의 한 호텔(Ambos Mundos Hotel)에서 8년간 머물며 쿠바의 풍경과 바다에 영감을 얻어  노인과 바다 썼다고 한다. 한반도 남서 끝 항구도시 목포의 전망 좋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나는 무슨 영감을 얻고 무엇을 쓸까?


음~ 쓰는 건 자신없고 부지런히 다녀야겠다. 친구들아 우리집에 놀러와. 우리 집에 방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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