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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Nov 13. 2022

여행한 고구마

한달살기, 뭘 먹고 지내나?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고구마 몇 개를 쪘다. 해남고구마라 달다. 어? 해남고구마? 해남이면 이곳 목포랑 가까운 곳 아냐? 난 이 고구마를 청송에서 샀는데?


그랬다. 10월 여행지인 청송에서 부산 동백전으로 구입했다. 9월 부산 여행에서 쓰다 남은 지역화폐 잔액을 소진할 작정으로 지역화폐 온라인몰에서 고구마 3키로를 주문한 것이었다. 청송으로 이틀 만에 배달받아 몇 개 못 먹은 채 청송 한달살기를 마쳤고 대구 집으로 돌아올 때 고구마도 차에 같이 실려 대구로 왔다. 그리고 다시 짐에 넣어 11월 여행지인 이곳 목포까지 가지고 온 것이다.


고구마가 여행한 동선(원지도 출처 : 네이버 지도)


해남에서 청송과 대구를 거쳐 목포까지 고구마가 이동했다. 목포에서 50km 떨어진 이웃 동네나 다름없는 해남 출신 고구마를 장장 800킬로미터를 끌고 다니다가 목포 숙소에서 이제야 쪄먹었으니 로컬푸드를 반(反)로컬푸드로 만들어버렸다. 신선도와 맛도 떨어졌겠지만 저장성 높인다고 냉장고에 넣었으니 보관 에너지도 쓰고 차량으로 장거리 이동을 시켰으니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도 더 보탰다. 이 고구마 때문에 진짜 지구가 더 더워졌을까?


고구마로 시작한 김에 먹는 이야기나 해 볼까? 한달살기 여행의 식생활은 어떻게 이뤄질까?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지만 누구에게라도 참고가 될까 오지랖을 부려보려고 한다. 


여행 중에도 가급적 동네 시장을 이용하고 지역의 먹거리를 소비하려고 했다. 이번 고구마를 계기로 구입만큼 잘 먹어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고성에서는 거진항 젓갈 가게에서 사 먹은 명태무침과 가자미식혜가 맛있어서 여러 번 이용했다. 지인들에게 소개도 하고 택배 주문도 대신 넣는 바람에 순식간에 가게 큰 손 손님이 되기도 했다. 거제에선 봄이라 시장에서 데친 죽순을 원 없이 사다 먹었고 제주와 청송에서는 세화 오일장과 현동면의 오일장을 애용했다.


그렇다면 한달살기 여행 중 구체적 끼니 해결법은 어떻게 될까?

아침은 빵과 과일, 커피로 먹는다.
점심은 관광 중에 사 먹는다.
저녁은 대체로 숙소에서 한식으로 해 먹는다.


점심은 매일이 외식이다. 나는 평소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만든다'라고 여기기 때문에 나에게 좋은 걸 먹이려고 애쓴다. 점심식당에서 특별히 고른 메뉴로 사 먹기 때문에 저녁은 숙소에서 소박하게 먹는다. 국물 요리 하나에 반찬 하나면 충분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바꿔가며 먹는다 하더라도 두 끼 연속 외식은 내키지 않았다. 여행이 일상이니 외식과 집밥 사이도 균형이 필요했다.


장기여행 식생활 팁을 하나 소개하자면, '토마토 활용법'이다. 여행지 장바구니에서 떨어지지 않는 과일이 토마토다. 토마토는 과일과 야채를 오가는 쓰임새로 활용도가 높다. 생으로도 먹지만 버터로 살짝 구워 빵에 올려 먹어도 되고 치즈를 얹어 먹어도 훌륭하다. 완숙 토마토는 잼을 만들어 빵에 발라 먹거나 파스타 소스로도 쓴다. 여기에 토마토 계란볶음, 토마토 계란탕 밥반찬까지 루두루 응용이 능하다.


다양한 쓰임새를 능가하는 토마토의 매력은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행하는 도시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 방식이 조금씩 달랐는데 토마토는 쓰레기가 없으니 여행자에겐 이래저래 효자 식재료다.

 

토마토를 활용한 아침 식사


여행의 반은 먹는 일이니 외식은 그 자체로 여행의 일부가 된다. 한 지역의 음식을 먹는 것은 그 지역의 문화의 총화를 맛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잘 찾아 먹는 것은 여행을 풍요롭게 만든다. 가는 곳마다 지역 특색 음식을 사 먹으려고 애썼는데 여행지별로 기억에 남는 음식을 떠올려보면 다음과 같다.

부산 : 멸치쌈밥, 돼지국밥, 밀면
거제 : 간장게장, 물회, 코끼리조개 해물탕
제주 : 자리돔물회, 톳물김치, 햇고사리볶음, 한라봉
고성 : 막국수, 명태무침
광주/나주 : 홍어삼합, 애호박찌개, 나주곰탕, 육회비빔밥
청송 : 골부리국(고디국, 다슬기국), 청송사과
목포/무안 : 낙지초무침, 생낙지비빔밥, 민어무침회, 꽃게살비빔밥

   

마침 지금 내가 여행하는 지역은 '맛의 도시'를 표방한 목포다. 근대 유적에 끌려 목포까지 오게 되었는데 맛있는 밥상이 매일마다 펼쳐지니 구경은 잠시요, 맛 여운은 오래갔다. 목포 출신 연예인 박나래씨가 인터뷰에서 "목포는 맛집이 따로 없다. 들어가서 먹는 곳이 바로 맛집이다"라고 했다는데 목포살이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 이의를 달 수가 없다. 목포에선 먹고 싶은 음식적어놓고 밥 사 먹을 날수를 헤아려가며 여행해야 할 정도다.



그러나 저러나 이 해남고구마를 이곳 목포에서 다 먹지 못하면 다음 달 여행지 인천까지 또 데리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 고구마를 전국 일주시킬 순 없지. 고구마로 또 무얼 해 먹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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