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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립보행을 허하라

'오피스텔에서 한달살기' 뒷담화

by 위트립

여행만 떠나면 '내가 가장 가난한 여행자'가 된다. 집만 나서면 어디서 그렇게 '헝그리 정신'이 샘솟는지 저렴한 숙소만 찾아다니곤 했다. 그 습성(習性) 속에서 여행하던 시절, 그래도 나만의 호텔 선정 원칙이 있었으니, '창문 없는 방은 피한다'였다. 한달살기 여행에서 한 달 숙소를 고를 때는 '원룸(오픈형 원룸)은 피한다'가 조건이었다. 적어도 공간 분리가 되는 투룸(분리형 원룸) 이상의 숙소에서 묵으며 여행했다.


그러나 인천 숙소는 예외였다. 복층형 원룸 오피스텔에서 지낸 지 두 주째 되던 어느 날 뒷목이 뻐근하고 고개 돌리기가 불편했다. 처음엔 '잠을 잘못 잤나'하고 대수롭잖게 넘겼다. 셋째 주 쯤 되니 증상이 더 심해졌다.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머리가 어지럽고 목이 불편한 게 영 몸이 개운하지 않았다.


동네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했다. 평소 병원이랑 진짜 안 친해서 일 년에 한 번 건강검진 외엔 병원 문턱을 넘지 않는 내가 여행 와서 웬 병원행인가 싶었다. 두 번째 진료 때 의사 선생님이 내 자세를 지적하셨다. 목을 앞으로 빼고 어깨를 앞으로 움츠려 긴장하는 자세가 문제라는 것이었다. '내가? 난 나름 곧고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데?' 동의가 잘 되지 않았다.


인천 숙소로 돌아와서 복층 오피스텔의 2층 방으로 올라가다가 불현듯 떠올랐다. 이런 것도 "유레카"라고 외쳐야 되나? '아! 이 복층이 문제였구나!'


복층형 오피스텔에서 한달살기라~ 시작은 좋았다. 왜냐하면 오피스텔에서도 살아보고 싶었고 복층에서도 살아보고 싶었으니까. 인천 숙소는 우리가 애초에 정한 숙소 선정 원칙인 '적어도 투룸'에는 어긋났지만 '복층'이라 어느 정도 공간 분리가 되겠다 싶어 계약한 것이었다.


리더스_복층_수정.jpg
붕어빵가게_수정.jpg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 냉장고, 세탁기, 수납공간까지. 지하철 출구에서 여덟 발걸음의 초초역세권에 무려 붕세권이었던 숙소


늘 그랬듯이 새 집으로 이사하자마자 우리 둘은 각자 쓸 공간을 정했다. 혹자는 '7평짜리 원룸 오피스텔에서 공간을 정하고 말고가 어딨느냐'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좁아도 영역은 영역이다. 아니, 좁을수록 '영역본능'이 더 치열한 법이다.


난 복층을 택했다. 덩치 작은 내가 키 낮은 천장 아래 지내기가 더 나을 거 같아 천장 높은 1층을 남편에게 양보했다. 내심 복층에 대한 로망도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서야 아래층에서 안 보이던 나지막한 공간이 은밀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비밀의 다락방'에 눈이 먼 내게 허리를 못 펴는 것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복층 2층 방에서 천장에 머리 부딪히랴 늘 조심해야 했다. 잠시 방심한 새에 머리를 박은 적도 몇 번 있었다. 저녁을 먹고 2층에만 올라가면 나도 모르게 허리를 구부리고 목을 앞으로 뺀 채 '주의 모드'로 지냈던 것이다. 결국 인천살이를 며칠 안 남겨두고 짐 싸서 아래층으로 내려와야 했다.


복층_이층방_수정.jpg 첫 눈에 훅 넘어가버린 복층 공간. 여기선 잠만 잤어야 했어. ㅠㅠ


그놈의 여행이 뭔지 멀쩡한 내 집 놔두고 단칸방 복층살이를 자처하더니 삼 주만에 한의원 신세라니. 한달살기 여행 11개월 만의 참사요, 한달살기 방 구하기 노하우를 설파하고 다니던 내게 굴욕이다.


오피스텔광고_수정.jpg 인천 숙소 부근 오피스텔 임대 광고. 한달임대와 같은 단기임대는 이 가격보다 더 비싸짐. ㅠㅠ


이제부터 집 구할 때 제1원칙은 '신체권이 보장될 것!'. 여기서 신체권이란 '인간이 자신의 신체를 생리적으로 편안하게 부릴 수 있는 권리'가 되겠다. 한달살기 여행자에게 직립보행을 허하라!




※ 2022년 12월 인천 한달살기 경비(2인 기준)

숙박비 90만

식비 96만

교통 44만

기타 72만(어머니 약+대구왕복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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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302만원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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