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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Jan 09. 2023

직립보행을 허하라

'오피스텔에서 한달살기' 뒷담화

여행만 떠나면 '내가 가장 가난한 여행자'가 된다. 집만 나서면 어디서 그렇게 '헝그리 정신'이 샘솟는지 저렴한 숙소만 찾아다니곤 했다. 그 습성(習性) 속에서 여행하던 시절, 그래도 나만의 호텔 선정 원칙이 있으니, '창문 없는 방은 피한다'였다. 한달살기 여행에서 한 달 숙소를 고를 때는 '원룸(오픈형 원룸)은 피한다'가 조건이었다. 적어도 공간 분리가 되는 투룸(분리형 원룸) 이상의 숙소에서 묵으며 여행했다.


그러나 인천 숙소는 예외였다. 복층형 원룸 오피스텔에서 지낸 지 두 주째 되던 어느 날 뒷목이 뻐근하고 고개 돌리기가 불편했다. 처음엔 '잠을 잘못 잤나'하고 대수롭잖게 넘겼다. 셋째 주 쯤 되니 증상이 더 심해졌다.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머리가 어지럽고 목이 불편한 게 영 몸이 개운하지 않았다.


동네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물리치료를 했다. 평소 병원이랑 진짜 안 친해서 일 년에 한 번 건강검진 외엔 병원 문턱을 넘지 않는 내가 여행 와서 웬 병원행인가 싶었다. 두 번째 진료 때 의사 선생님이 내 자세를 지적하셨다. 목을 앞으로 빼고 어깨를 앞으로 움츠려 긴장하는 자세가 문제라는 것이었다. '내가? 난 나름 곧고 바른 자세를 유지는데?' 동의가 잘 되지 않았다.


인천 숙소로 돌아와서 복층 오피스텔의 2층 방으로 올라가다가 불현듯 떠올랐다. 이런 것도 "유레카"라고 외쳐야 되나? '아! 이 복층이 문제였구나!'


복층형 오피스텔에서 한달살기라~ 시작은 좋았다. 왜냐하면 오피스텔에서도 살아보고 싶었고 복층에서도 살아보고 싶었으니까. 인천 숙소는 우리가 애초에 정한 숙소 선정 원칙인 '적어도 투룸'에는 어긋났지만 '복층'이라 어느 정도 공간 분리가 되겠다 싶어 계약한 것이었다.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 냉장고, 세탁기, 수납공간까지. 지하철 출구에서 여덟 발걸음의 초초역세권에 무려 붕세권이었던 숙소


늘 그랬듯이 새 집으로 이사하자마자 우리 둘은 각자 쓸 공간을 정했다. 혹자는 '7평짜리 원룸 오피스텔에서 공간을 정하고 말고가 어딨느냐'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좁아도 영역은 영역이다. 아니, 좁을수록 '영역본능'이 더 치열한 법이다.


난 복층을 택했다. 덩치 작은 내가 키 낮은 천장 아래 지내기가 더 나을 거 같아 천장 높은 1층을 남편에게 양보했다. 내심 복층에 대한 로망도 있었다. 계단을 올라가서야 아래층에서 안 보이던 나지막한 공간이 은밀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비밀의 다락방'에 눈이 먼 내게 허리를 못 펴는 것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복층 2층 방에서 천장에 머리 부딪히랴 늘 조심해야 했다. 잠시 방심한 새에 머리를 박은 적도 몇 번 있었다. 저녁을 먹고 2층에만 올라가면 나도 모르게 허리를 구부리고 목을 앞으로 뺀 채 '주의 모드'로 지냈던 것이다. 결국 인천살이를 며칠 안 남겨두고 짐 싸서 아래층으로 내려와야 했다.


첫 눈에 훅 넘어가버린 복층 공간. 여기선 잠만 잤어야 했어. ㅠㅠ


그놈의 여행이 뭔지 멀쩡한 내 집 놔두고 단칸방 복층살이를 자처하더니 삼 주만에 한의원 신세라니. 한달살기 여행 11개월 만의 참사요, 한달살기 방 구하기 노하우를 설파하고 다니던 내게 굴욕이다.


인천 숙소 부근 오피스텔 임대 광고. 한달임대와 같은 단기임대는 이 가격보다 더 비싸짐. ㅠㅠ


이제부터 집 구할 때 제1원칙은 '신체권이 보장될 것!'. 여기서 신체권이란 '인간이 자신의 신체를 생리적으로 편안하게 부릴 수 있는 권리'가 되겠다. 한달살기 여행자에게 직립보행을 허하라!




※ 2022년 12월 인천 한달살기 경비(2인 기준)

숙박비 90만

식비 96만

교통 44만

기타 72만(어머니 약+대구왕복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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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302만원


퇴직 후 '한달살기 전국일주' 중입니다. 한달살이와 여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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