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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Jul 22. 2021

은퇴 후 첫 알바 체험기

은퇴 후 난생처음, 알바

국세청으로 출근한 지 3일째이다. 은퇴 후 나의 첫 일은 일종의 텔레마케터, 정식 이름은 근로장려금 상담자이다. 3월 첫 주와 둘째 주 2주간, 10일 근무였다.

      

지난 두 달간 수면 불균형 때문에 고생했다. ‘퇴직’이라는 변화를 심리적으로 편안히 못 받아들이는 '은퇴 불안증' 때문이라고 자가 진단했다. 알바는 일시적으로나마 출퇴근 루틴을 반복해주면 잠 문제를 극복하지 않을까 해서 선택한 '불면증 극복용 프로젝트'였다.

      

사전 교육에 갔더니 근무자 20명은 다 여자들이었다. 주로 60대와 50대였고 드물게 40대로 보이는 분들도 있었다. 이번에 신입은 딱 2명이란다. 기존에 하던 사람들이 내게 어떻게 오게 되었냐고 궁금해한다. 자기들끼리는 몇 년째 같이 해서 서로 면면을 잘 아는 분위기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근무자 중 절반은 세무직 공무원 퇴직자들이었다.

     

난 잡코리아에서 근로장려금 상담업무 구인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지원이랄 게 별거 없고 이력만 작성해서 사이트에서 클릭만 하면 되는 거였다.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와서 하루 8시간 근무, 3, 9, 12월에 각 2주씩, 5월엔 한 달을 근무해야 한다고 했다. 급여는 최저시급에 일일당 점심값 4,000원 지급, 주휴수당 지급. 5월은 한 달 근무라 10만 원이 추가 지급된다고 한다.

  

근로장려금 상담 업무라고 해서 국세청 창구에 앉아 '우아하게' 민원인 상담해주는 일인 줄 알았다.

 

세무서 본관 뒤 국세청 교육센터에 상담 근무가 가능한, 소위 콜센터가 있었다. 여기에서 특정 시기 때만 근로장려금 업무를 보는 것 같았다. 막상 가서 보니 근로장려금 상담 일이란 게 내가 생각한 거와 완전 딴판이다. 국세청의 창구에서 전화받거나 대면 상담해줄 거란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100% 전화 상담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상품이나 서비스를 팔거나 홍보하는 아웃바운드 업무는 없다. 인바운드 업무. 즉 걸려오는 고객을 상대해 질문에 답해주거나 그들의 요구를 처리해준다. 근로장려금 신청 대상자인지 조회 해주는 일, 신청 대상자가 아닐 경우 사유 알려주기, 근로장려금을 대신 신청해주고 지급시기와 금액 알려주기가 내가 하는 일이었다.  


한마디로 나는 일일 8시간짜리 텔레마케터가 된 거다. 코로나라서 국세청 창구의 대면 접수를 아예 안 받고 전화나 인터넷, ARS 신청만 받았다. 근로장려금 수혜자가 고령이거나 일의 특성상 인터넷 접근이 쉽지 않아서인지 전화가 폭주했다. 전화 콜수가 너무 많았다. 하루 100건도 넘는 전화를 소화한다. 신청 첫날은 150통 넘게 전화를 받았다.


귀가 먹먹하고 수화기를 들고 있는 팔도 아프다. 텔레마케터들이 왜 머리에 헤드셋을 쓰고 일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평소에 귀에 이어폰 끼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이 헤드셋마저도 불편했다. 귀가 아파서 수시로 오른쪽 왼쪽을 교대로 바꿔가면서 전화를 받았다.

    

하루 종일 전화기 앞에 앉아 내게 들어오는 콜을 무조건 받아야 했다. 근로장려금 해당자가 신청을 대행해달라는 일은 차라리 간단하다. 주민번호를 조회해서 신청해주고 얼마가 언제 지급되는지 알려주면 된다. 대개 고맙다는 인사로 끊는다. 그런데 해당이 안돼서 사유를 조회해달라는 사람은 화를 내며 불만을 쏟아놓았다. 이 일을 하며 세상에 참 다양한 사람들의 군상이 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전화 목소리 너머 인격이 보였다. 점잖고 매너 좋은 어르신이 계신 반면, 빚쟁이처럼 악다구니 쓰며 소리부터 질러대는 사람도 있었다.

    

9시에 일이 시작되어 50분씩 전화받고, 10분씩 쉰다. 점심시간 1시간. '50분 전화받고 10분 쉬기'를 8번 반복해야 퇴근이다. 좁은 사무실과 좁은 내 자리가 답답했다. 쉴 때조차 옆사람이 전화 통화하는 걸 다 들어야 하니 쉬는 것 같지도 않았다. 10분 쉬는 시간마다 국세청 뜰로 나갔다. 건물 앞뒤를 걷기도 하고, 양지바른 곳에서 햇볕도 쬐면서 쉬는 시간을 보냈다. 쉬는 시간은 어찌나 빨리 가는지 시간은 절대로 공정하게 흐르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근무한 세무서 울타리 담 하나 건너에는 내가 전에 근무했던 학교가 있었다. 내가 4년간 근무했던 내 방도 보였다.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내가 내 발로 차고 나온 세상이 바로 내 눈 앞에 있다니.

          

전화를 하루 정도 받고 나니, 규정과 케이스별 적용 사례가 숙지되었다. 업무 자체는 단순 반복 업무다. 내겐 3가지 측면에서 힘들었다.

무엇보다, 전화 콜수가 너무 많아 귀가 아픈 게 문제였다.

둘째는 칸막이 쳐진 좁은 책상에 8시간을 꼬박 갇혀 앉아 있는 게 고문에 가까웠다.

셋째는 각종 불만 있는 사람들의 짜증 섞인 민원을 처리하는 게 힘들었다.


이 일을 해보니 '내가 살면서 받은 엄청난 콜의 보험과 대출상품 전화 영업이 다 이런 식으로 이뤄지겠구나' 싶다. 텔레마케터 노동자들은 얼마나 많을까? 그들의 근로조건 또한 나랑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그들은 마케팅 실적과도 바로 연결되니, '귀 아프고 좁은 책상에 갇혀 일하는 답답함'은 둘째치고 '감정 노동'과 '성과 압박'에도 시달리겠지.

  

어쨌든 하루 8시간 전화받기 알바도 시간이 가니 끝이 있더라. 30년 넘게 평생 월급만 받아온 내가, 나와 한번도 연관지어본적 없는 단어, '최저시급'에 '주휴수당'이란 게 적용된 임금을 받았다. 10일 치 임금 90만 원이 통장에 꽂혀 있었다. '내 피 같은 시간과 바꾼 돈, 그것도 초단위로 바꾼 돈'이라 느낌이 달랐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정도 들었다. 같은 신입으로 나의 투덜거림을 들어준 내 짝꿍과, 묻는 것마다 친절히 가르쳐주던 내 사수와 팀장이 고마웠다.


끝날 때가 되니 5월에도 근무할 수 있냐고 팀장이 물었다. 미련 없이 못한다고 했다. 왜? 내 귀는 소중하니까. 대신 '자리에 갇혀 귀 아파가며 하는 일'이 아니라면 무슨 일이든 환영이다. 나의 체험 삶의 현장 2탄은 어디가 될지 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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