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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시티에 가면 세 번 놀란다

by 위트립


"거기 안 위험해?" 멕시코에 간다고 했더니 주변 사람들 반응이었다. 몇 년 전 자료이긴 하지만 인구 10만 명당 살인건수로 따진 세계에서 위험한 도시에 멕시코 티후아나가 1위를 마크하고 멕시코의 5개 도시가 10위 안에 그것도 상위권으로 포함되었다고 한다. 영락없이 가장 위험한 나라다. 수도인 멕시코시티 또한 늘 위험한 도시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멕시코 거주 경험이 있는 지인은 내가 멕시코시티에 간다고 하니 현금 큰돈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혹 강도를 만나면 저항하지 말고 재빨리 주라고 조언했다. 이런 무시무시한 여행이라니. 강도에 만날 경우를 항상 대비하라니.



위험한 도시와 예술의 공존이라니


멕시코시티의 심인 소칼로 근처에 묵으면서 관광지만 다녀서 그런지 막상 현지에서는 위험하다는 느낌을 별로 못 받았다. 한 블록 단위로 경찰도 깔려 있고 시내 관광지에는 내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파리나 유럽의 유명 도시들만큼 소매치기에 대한 염려도 적었고 뉴욕이나 로스앤젤레스보다 노숙자나 약물중독자도 덜 만났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중 하나라는 멕시코시티는 놀랍게도 색깔의 도시였고 예술의 도시였다. 대규모 벽화와 수준 높은 그라피티를 길거리 어디서든 만났다. 1920년대 혁명정부가 공공미술 정책을 쓰면서 대통령궁, 교육부 건물, 대학교 등 도시의 주요 건물에 벽화를 그리게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시내 곳곳에서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를 만날 수 있고 프리다 칼로의 일생과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대통령궁의 벽화(디에고 리베라 작품). 멕시코의 역사, 문화, 전통을 망라한 그림.


교차로의 남자(디에로 리베라 작). 미국 록펠러재단 벽화로 제작되었다가 노동자 찬양 내용과 레닌을 그려넣은 것이 문제가 되어 파괴된 후 멕시코에서 다시 그린 작품


프리다 칼로의 생애 마지막 작품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영상 화면임)


평범한 건물에도 그림을 그려 넣고 개성 넘치는 색을 입혔다. 마치 크레파스를 손에 쥔 어린아이가 눈에 띄는 모든 여백에 그림을 그려대듯 멕시코 사람들도 집이든 건물이든 닥치는대로 그리고 칠했다. 멕시코 사람들은 다 예술가인가.



평범한 그라피티는 가라~


이런 선동적인 벽화라니...


바스콘셀로스 도서관에 들어서는 순간 독특한 공간감에 압도되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5차원 장면에 영감을 주었다고 하고 세계 10대 도시관 중 하나라고 한다. 네모난 평면에 가까운 책과 서가들로 이토록 입체적인 도서관을 구현해 내다니 멕시코 사람들을 진정 마야와 아즈텍과 톨텍과 테오티우아칸의 후손이다. 인류학박물관 뜰의 커다란 나무를 연상시키는 분수 또한 하루종일 쳐다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았다.


레고를 쌓아 올린듯한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국립인류학박물관의 뜰에서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지하철


공항에서 숙소까지 지하철을 갈아타고 이동한 비용은 단돈 5페소(한화 400원)였다. 인구 천만이 넘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는 도시의 발들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전기버스 트롤은 4페소(320원), 환승되는 지하철은 5페소(400원) 광역버스는 6페소(480원). 지하철로만 따지면 400원이니 놀라운 가격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런던, 파리, 베를린, 뉴욕 그 어떤 도시보다 요금이 싸다. 세계에서 가장 싼 지하철이 아닐까.

멕시코시티의 대표적 대중교통 메트로버스(굴절버스(왼), 이층버스(오))


멕시코시티의 엄청난 인구를 실어 나르느라 지하철도 열일 하는 중


지하철과 메트로버스는 저렴할 뿐 아니라 배차 간격도 짧다. 타보지는 못했지만 케이블카까지 사람을 실어 나른다고 한다. 지하철과 광역버스는 거의 2분 간격으로 온다.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하는 촘촘한 대중교통망'은 선진국의 유명 도시들보다 훨씬 훌륭했다. 이 정도면 대중교통의 천국이다. 시민들의 이동권이 공공재라는 인식이 기본적으로 받쳐줘야 가능한 대중교통 시스템, 이 또한 위험한 도시의 반전이다.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지하철 노선도. 예전에 문맹이 많아 역명을 그림으로 표시했다고 한다. 문맹인 외국인 여행자에게 너무 편리한 노선도!



'화장실도 팔아요'


멕시코시티의 북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화장실을 찾다가 내 눈을 의심했다. 5페소내고 지하철 타고 왔는데 터미널 화장실 가려면 7페소를 내라고 한다. 사설 박물관에서 입장료 외에 요금 10페소를 따로 내고 화장실을 이용한 적도 있었다. 지하철 요금의 2배인 화장실이라니. 화장실 이용은 지하철보다 더 고급 서비스란 말인가.


지하철역 앞에 있었던 공공유료화장실(6페소)


유료 화장실이 보편적인 유럽도 화장실 요금은 단거리 지하철 요금의 절반 정도로 대체로 1유로였다. 이 정도 가격이면 그래도 상식적이다.


멕시코는 우리나라식으로 환산하면 지하철 요금 1,500원에 화장실 이용비가 3,000원인 셈이다. 멕시코는 세계에서 화장실 요금이 가장 비싼 나라가 아닐까.

멕시코 도시 네 곳을 한 달반째 다니는 동안 무료 공공 화장실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공공화장실(Baño Publico)이란 표시가 있으면 5~6페소 정도의 반값 화장실을 의미했다. 이런 돈 받는 공공화장실조차 충분하지 않은지 사설 화장실 영업이 성행한다. 돈을 내고 식당이나 가게에 딸린 화장실만 이용하는 서비스다. 길거리에 'Baño(바뇨)'나 'WC' 간판이 그것이다.


화장실 영업 중. 1회 이용에 6페소




멕시코시티의 반전은 어디까지인가. 위험한 도시인데 예술이 살아있다. 원래 예술 전통과 문화 잠재력이 있는 나라인데 땅이 넓고 정치권력이 불안정해서 치안이 좋지 않다로 해석해야 하나?


공공 미술의 수준뿐 아니라 대중교통의 공공성도 세계 1 위급이다. 반면에 화장실 요금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 예술과 대중교통의 공공성은, '공공 편의시설로 여겨지는 화장실'에는 왜 적용되지 않을까. 멕시코는 종잡을 수 없는, 그래서 더 궁금해지는 나라다. 멕시코 너의 진짜 얼굴은 뭐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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