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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Oct 05. 2023

에콰도르에서 만난 동전 달러의 세계

해외 여행지에 오면 맨 처음 챙겨야 할 것은 두 가지다. 유심과 현금. 데이터가 없으면 공항에서 숙소를 못 찾아가니 버스를 검색하든 우버를 부르든 유심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숙소행 교통편을 미리 찾아 메모해 두기도 하고 가끔 공항 와이파이로 우버를 부르기도 했다. 내 경우 유심은 현지 시내에 가서 이튿날쯤 살 때가 많았다.     


그렇다면 최우선으로 준비해야 할 것은 현금이 되겠다. 현금이 없으면 당장 택시 공항버스를 탈 수 없다. 첫 끼니를 해결하는 데도 현금이 필요하다. 물론 우리나라처럼 신용카드가 보편화되지 않는 나라들을 전제할 때다.      


매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100달러 한 장을 그 나라 돈으로 교환했다. 멕시코에서도, 과테말라에서도, 콜롬비아에서도 그랬다. 에콰도르에 오니 현지 화폐가 따로 없단다. 놀랍게도 달러를 쓴다고 한다.    

  

에콰도르 화폐가 된 미국 달러


키토(Quito) 공항에서 커피 한 잔을 사 마시고 100달러짜리를 잔돈으로 바꿨다. 이제 달러 작은 돈도 생겼겠다, 에콰도르 달러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키토의 주요 도로를 관통하는 버스전용차로제 버스는 우리나라 지하철 개찰구같이 생긴 곳의 요금 투입구에 0.35달러(한화 470원)를 넣고 타야 한다. 시 외곽에 있는 적도 공원(Mitad del Mundo)에 갈 때는 버스 차장에게 편도 0.45달러를 지불했다. 빵 4개를 사고 1달러를 냈더니 20센트를 거슬러주었다.


키토 버스전용차로용 버스(요금 0.35달러)


1달러로 빵 4개를 사고 20센트를 거슬러 받았다. 빵 1개는 0.2달러.


달러로 요금을 내니 한국 돈으로 얼마인지 빨리 환산이 되는 점은 좋았다. 그러나 물가 낮은 나라에서 달러를 쓰니 교통요금은 0.5달러 미만이 되어버려 버스를 탈 때마다 동전을 수북이 챙겨야 했다.(에콰도르는 교통카드가 도입되지 않았다.)  

                  

바뇨스에서 악마의 폭포 갈 때 버스 요금(0.5달러)으로 낸 동전 5개(1콰터(25센트)+1다임(10센트)+5센트3개=50센트)


로컬 식당의 한 끼 식사값은 2.5~4.5달러 정도였다. 키토에서 3시간 반을 달려가는 바뇨스까지 시외버스 요금은 5달러였다. 여행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거의 모든 소비가 달러 몇 개 안에서 이뤄지는 셈이다.     


에콰도르 실물 경제에서 1달러 이하 동전이 가장 바빠 보였다. '1달러>50센트(하프 달러)>25센트(콰터)>10센트(다임)>5센트>1센트'의 6가지 동전이 이 사람 손에서 저 사람 손으로 바쁘게 오갔다. 1달러 이하는 100진법이라 처음에는 이것도 한참 헷갈렸다.


종이돈도 6종(1달러<5달러<10달러<20달러<50달러<100달러)이 충실히 쓰인다. 물론 100달러를 내면 가게 주인들이 싫어한다. 위조의 부담감 때문이다. 사실 이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도 50달러나 100달러 지폐를 냈을 때 '머니 마커'로 줄을 그어 변색 여부로 위조지폐 감별을 당한 적이 있었다.      


에콰도르 사람들은 언제부터 달러를 썼을까? 키토에서 현지 교포를 만났을 때 물어보았다. 그분들의 첫 대답은 "오죽했으면 그랬겠냐"였다. 치솟는 물가에 자국 통화 가치가 가파르게 하락하고 은행이 도산하고 심지어 예금자에게 은행 예금을 1년간 꺼내지 못하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결국 2000년부터 자국 통화 수크레를 버리고 미국 달러를 법정통화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연간 100%씩 오르던 물가가 달러화(dollarization) 이후 한 자릿수로 잡혔고 어느 정도 성공한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자고 나면 물가가 치솟는 아르헨티나도 심상찮다. 지금 한창 대통령 선거 중인 아르헨티나에서는 '물가 안정을 위해 에콰도르처럼 달러를 자국 통화로 삼겠다'라고 주장하는 대통령 후보가 최근 여론 조사에서 깜짝 1위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나라가 통화주권을 포기하면 통화량 조절과 금리 정책을 맘대로 할 수 없게 되고 이는 곧 미국 경제에 고스란히 종속되는 '경제 식민화'가 되는 게 아닐까. 에콰도르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미국 대통령이 그려진 미국 돈을 쓰면서 어떤 가치를 내면화하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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