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에서 파타고니아(Patagonia) 트레킹을 했다. 토레스델파이네(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에서 4박5일을 걷는 중이었다. 4일째 숙소인 칠레노(Chileno) 산장에 도착했다. 리셉션에 예약증을 보여주고 숙소를 배정받았다.
파타고니아 오늘의 집, 세계에서 가장 비싼 텐트
오늘의 집은 텐트! '뭐? 이런 텐트에서 하룻밤 자는 데 288달러(37만원)라고?' 난방되고 불멍 되는 감성 글램핑장도 아니고 고작 매트에 폴리 침낭 하나뿐인 2인용 텐트에 5성급 호텔비라니! 그렇게 해서 나는 '5성급 호텔에는 못 자봤어도 5성급 텐트에서 자 본 사람'이 되었다.
칠레노 산장의 1박 숙박료 288달러(한화 374,000원)짜리 텐트, 세계에서 제일 비싼 텐트 아닌가요?
산장 측에서 미리 설치해 놓은 텐트였다. 지면으로부터 띄워 설치된 텐트라 오르내리기는 힘들어도 바닥이 고르고 꿉꿉하지 않고 비가 와도 염려 없다. 11월 초, 이곳 계절로는 봄이지만 밤이면 0도까지 기온이 떨어진다. 패딩까지 껴입고 침낭에 들어가니 염려했던 것만큼 춥지는 않았다.
매트와 침낭, 베개가 갖춰진 텐트. 프란세사 산장도 같은 텐트였는데 새벽부터 아침까지 비가 내렸는데도 문제가 없었다.
남미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하룻밤 숙박비로 50달러를 넘긴 적이 없었다. 이곳 산장에서 텐트를 하루 빌려 자는 비용이 다른 곳 일주일치 숙박비에 달했다.
파이네 그란데 산장(왼)과 텐트 숙박(오), 뜨거운 물 샤워와 취사 및 캠핑이 가능하다.
로스쿠에르노스 산장의 8인실 도미토리룸(왼), 칠레노 산장의 텐트 숙박(오)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을 트래킹 하려면 이렇게 '텐트나 도미토리 침대를 빌려 자거나, 텐트와 침낭을 지고 다니며 자거나' 둘 중 하나이다. 겨우 내 한 몸 걷는 것도 버거운 중년의 우리 부부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남들 3박4일 한다는 W트래킹을 4박5일로 잡았을 뿐 아니라 4박의 숙박비로 거액(한화 120만원=텐트3박+산장 도미토리1박)을 지출했다.
이효리 옷, 파타고니아?
파타고니아는 칠레와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는 빙하지역을 말한다. 지구상에서 남극 대륙과 그린란드를 제외한 가장 큰 빙하권으로 남위 40도에서 남아메리카 최남단 남위 55도 지역까지 이르는 곳이다. 친환경 자연 보존을 강조한다는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 가수 이효리가 즐겨 입는 옷으로 알려져 있는 기업 '파타고니아'가 이곳에서 회사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파타고니아의 흔한 풍경
칠레와 아르헨티나 양쪽에서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는데 두 주가 걸렸다. 파타고니아 여행법은 빙하권 안으로 들어가서 설산 주변을 걷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길은 가이드 없이 걸을 수 있고 설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장엄한 만년설산과 빙하 계곡과 파스텔톤 빙하호를 수시로 만난다.
그레이(Grey) 빙하로 가는 길
설산과 빙하호수를 수시로 만나면서 걷는다. 지루할 새가 없다.
전 구간, 이정표만으로 가이드 없이 트래킹 할 수 있다.
칠레 측인 토레스델파이네는 눈이 녹고 봄이 시작되는 11월부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고 여름인 12월에서 3월까지 성수기를 맞는다. 대개 여행자들은 푸에르토나탈레스(Puerto Natales)를 거점으로 삼는다. 이곳에서 텐트와 침낭, 코펠과 버너 등 캠핑장비를 빌리고 식자재를 준비해 트래킹을 다녀온다. 3박4일짜리 W트래킹이 가장 대중적이고 빙하 둘레길 전 구간을 7일간 걷는 O트래킹도 있다.
푸른색선이 W자 모양의 W트래킹 코스
가장 난이도 높은 코스인 베이스 토레스(Base Torres)의 삼봉 가는 길, 칠레노산장에 숙박하고 오르는 방법도 있다.
W트래킹의 하이라이트, 베이스 토레스(Base Torres) 전망대에서 바라본 삼봉(11월 초)
토레스델파이네 트래킹을 끝낸 여행자들은 아르헨티나의 엘칼라파테(El Calafate)로 넘어가 모레노(Moreno) 빙하를 방문하고 마지막으로 엘찰튼(El Chalten)으로 가서 파타고니아의 또 하나의 미봉(美峰) 피츠로이(Fitz Roy)를 걷는다. 피츠로이산은 파타고니아기업의 로고에 들어간 설산으로서 토레스델파이네의 하이라이트인 삼봉에 필적되는 곳이다.
페리토 모레노(Perito Moreno) 빙하. 빙하숲도 보고 빙하 위도 걷는다.
피츠로이 산행은 피츠로이 봉우리를 보며 걷는 구간이 많아 눈이 즐겁다.
몸에 기억되는 여행지, 파타고니아
남미 대자연 여행의 백미는 어딜까? 누구는 우유니가 가장 좋았다고 하고 누구는 파타고니아를 최고로 꼽았다. 우유니 소금사막과 우유니 고원, 칠레 아타카마로 이어지는 사막 지대도 좋았지만 파타고니아는 체험의 방법도 강도도 달라 '몸에 기억되는 여행지'였다.
파타고니아의 또다른 이름은 바람. 프란세사 산장에서 로스쿠에르노스 산장 가는 길
파타고니아를 두 단어로 정의하라면 얼음과 바람이었다. 몸을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의 맞바람을 뚫고 한발 한발 내딛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면 '유빙 떠다니는 빙하호와 설산 봉우리'가 펼쳐져 있었다. 땀과 근육통을 금세 잊게 만들었다.
길은 비교적 잘 나 있다. 앞선 등반객의 스틱 자국을 열심히 보면서 걸었다.
토레스델파이네는 빙식 계곡이 침강해 피요르드와 리아스식 지형을 만든 곳이라 걷는 동안 '설산만 빼면 우리나라 남해안'인 듯한 풍경도 꽤 있었다. 빙하는 아니지만 흐르는 강이 깎은 낮은 지형이 얕은 바다에 잠기면서 만든 한반도 남서해안의 다도해와 리아스식 해안도 이곳의 형성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는 우리나라 남해안의 어디인가. 다도해와 리아스식 지형이 만든 장관이다.
아르헨티나의 엘찰튼에서 다녀온 피츠로이와 토레(Torre) 호수는 입장료도 없고 둘 다 당일치기가 가능했다. 반면 칠레 쪽 파타고니아 트래킹은 빙하 지역을 내 두 발로 걸었을 뿐인데 '국립공원 내 산장 숙박이 불가피하고 숙박 시설이 희소하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돈이 많이 들어 씁쓸했다. 걷는 자에게 이렇게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대자연이라니. 칠레는 산장 운영을 민간 회사에만 맡기지 말고 개선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아름다운 화장실 전망, 웰컴 센터 화장실에서(첫 번째로 아름다운 화장실 전망은 중국 호도협 중도객잔의 화장실에서 본 위룽쉐산(옥룡설산)) - 위트립 선정-
귀국하면 남파랑길을 걸으며 파타고니아의 토레스델파이네의 W길의 한 자락과 비교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5성급 호텔 숙박비도 필요 없고 입장료도 필요 없는 곳, 걷는 자의 마음만 있으면 언제든지 열려있는 , 그 길을.
< 파타고니아 여행 정보 >
1) 칠레쪽 파타고니아 -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
- 거점 도시 : 푸에르토 나탈레스
- 푸에르토나탈레스에서 숙박, 짐 보관 후 장비 렌트, 식재료 준비해 토레스델파이네국립공원을 3박4일 정도로 다녀온다.(당일치기 코스, 1박2일, 4박5일, 6박7일.. 코스는 개인에 따라 다름.)
- W코스(3박4일)일 때, 전후 푸에르토나탈레스 각각 1박 필요하므로 최소 5박6일 소요.
< W코스 트레킹 방법(서->동, 3박4일 기준) >
1일차 : 푸에르토나탈레스 버스터미널 - 2시간 - 라구나 아마르가(Amarga)에서 입장권 확인 후 버스 재탑승 - 푸데토(Pudeto)하차 - 보트 탑승 40여분 - 파이네그란데산장 짐 보관 후 그레이빙하전망대까지 왕복 - 파이네그란데산장 숙박
2일차 : 브리타니코전망대까지 트레킹 후 프란세사산장 or 로스쿠에르노스산장 숙박(짐 메고 이동, 폐산장인 이탈리아노산장에 짐 두고 브리타니코 왕복 가능)
3일차 : 트레킹으로 칠레노산장까지 이동, 칠레노산장 숙박(짐 메고 이동)
4일차 : 베이스토레스전망대까지 일출산행 후 짐 찾아 웰컴센터(Centro de Bienvenida)까지 하산, 셔틀버스(20분)를 타고 라구나 아마르가까지 나온 후 버스 탑승 - 2시간 - 푸에르토나탈레스 버스터미널
- 여행 준비 순서 : 트레킹 계획 짜기 -> 산장 숙박 예약 -> 입장권 구매(국립공원 내 머무는 기간에 따라 가격 상이 3박 39불, 4박 49불)
2) 아르헨티나쪽 파타고니아 - 모레노 빙하, 피츠로이산
(1) 모레노빙하
- 거점도시 : 엘칼라파테
- 투어로만 가능. 빙하 미니트레킹, 빅트레킹이 있고 빙하 트레킹 없이 빙하투어(보트투어+전망대)도 가능하다. 다양한 상품을 시내 여행사에서 판매 중
(2) 피츠로이산
- 거점도시 : 엘찰튼
- 엘찰튼에 숙박하며 1일은 피츠로이산(9시간, 전망대까지만 가기도함), 2일째는 토레호수(7시간)를 다녀옴.
- 둘다 엘찰튼 시내에서 도보로 다녀올 수 있고 입장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