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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Nov 20. 2023

아르헨티나 돈은 지갑 대신 이것이 필요하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어떻게 돌아가는 것일까

해외여행에서 현지 화폐는 필수다. 카드 결제 사정이 나라별로 달랐다. 설령 카드 결제가 보편적인 나라라고 하더라도 동네 가게나 길거리 노점이나 시장에서는 현금이 필요하다.


남미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달러는 비상금 정도만 소지했고 주로 현지 화폐를 ATM기에서 뽑아 썼다. 그런데 앞서 여행한 사람들이 아르헨티나에는 무조건 달러를 갖고 가서 암환전해 쓰라고 조언했다. ATM기 수수료가 터무니없이 비싸고 달러 가치가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르헨티나 돈은 지갑 대신 고무줄이 필요하다

 

오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플로리다 거리에서 100달러 지폐 1장을 환전했다. 물론 암환전소에서 환전했다. 100달러 지폐 1장으로 1,000페소짜리 93장을 받았다(1달러=930아르헨티나페소(ARS), 암환율).


2,000페소짜리가 가장 고액권이라고 들었는데 여행 열흘이 넘도록 아직 본 적이 없다. 지폐 93장은 지갑에 들어가지 않는다. 환전소에서 고무줄로 묶어 준다. 지갑이 무용지물이다. 다발돈엔 고무밴드만한 것이 없다. 받을 때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영화에서 보듯 두둑한 다발돈을 옷 깊숙히 찔러 넣고 환전소를 나섰다.


미화 100달러 1장을 주면 아르헨티나 1,000페소 93장을 준다.


식당에서 두 사람 점심을 먹었더니 31,000페소가 나왔다. 1,000페소짜리 31장 뭉치돈으로 음식값을 계산했다. 돈을, 주는 사람이 한 번 받는 사람이 한 번, 서로 마주보고 한참 동안 세었다. 현금 31장은 약과였다. 두 사람 투어비를 내기 위해 돈다발 세 뭉치를 꺼내 계산하는 사람도 봤다. 현금없는 사회에 역행하는 수준을 넘어 '어른들이 돈 주고 받기 놀이' 하는 이 코메디같은 풍경이 아르헨티나의 모든 거래에서 일어난다.



숙박비 결제의 기싸움, 공식환율이냐 암환율이냐


지난 주에 엘찰텐(El Chalten)에서 숙박비를 지불할 때의 일이다. 3일치 숙소의 고시 가격은 미화 330달러였다. 숙소 주인이 현금 결제만 가능하다고 하며 미화 330달러를 내라고 했다. 아르헨티나페소로 내겠다고 하니 암환율로 환산해 317,000페소(330*960페소, 한화 약 43만원, 1달러=960페소, 암환율)를 내라고 했다.

 

부킹닷컴을 통해 미리 숙소에 문의하고 받아 둔 메시지를 보여주었다. 카드 결제는 안되고 현금으로 결제하면 공식환율로 해주겠다는 답변이었다. 숙소비 330달러를 공식환율로 계산하면 330*365.5=121,000페소이다(1달러=365.5페소, 공식환율, 한화 약 17만원). 그래서 121,000페소를 지불했다. 숙소 주인의 환율 트릭을 선방했다!


숙소측에서 숙박비는 현금 결제만 가능하고 공식환율로 해주겠다는 답변을 보내왔다.


숙소 주인이 부르는대로 암환율로 지불했다면 돈을 2.6배나 더 준 게 된다. 한국돈으로 43만원 낼 뻔할 것을 17만원을 낸 것이다. 차액이 무려 한화 26만원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까.



두 가지 환율, 공식환율과 암환율


공식환율은 뭐고 암환율은 뭘까? 아르헨티나에 오기 전 여행자를 괴롭힌 존재가 바로 두 가지 환율의 존재였다. 비공식 환율은 암환율 또는 블루달러환율이라고도 한다.(bluedolor.net에서 확인 가능)



 [공식환율]1달러=365.5페소, [암환율]1달러=960페소 (2023. 11. 14기준)
 암환율이 공식환율의 2.6배에 달한다.


아르헨티나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지자 사람들이 자국 돈을 신뢰하지 못하고 달러를 모으기 시작했다. 국가에서 일반인이 달러 사는 것을 금지시켰고 이에 달러 가치가 높아져 공식환율에 웃돈을 주고 암시장에서 달러를 사는 거래가 성행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이 고착되면서 두 가지 환율, 공식환율과 암환율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한다.


달러와 유로, 브라질 레알화로 물건을 구입하면 위 환율로 거래가 가능하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시내 대부분의 상점이 사설환전소를 겸하다시피 한다.


암환율은 자유시장의 수요공급에 의해 작동되고 단어가 주는 뉘앙스처럼 그렇게 위험하지 않았다. 실질환율로서 일반인들이나 여행자들의 상거래는 다 암환율로 이뤄진다. 심지어 비씨카드나 마스터카드조차 항공비와 숙박비에서 암환율의 60~70%를 반영해 결제된다고 한다.

         

복잡해보이지만, 정리하면, 아르헨티나에서는 '내가 달러를 페소로 바꿀 때는 암환율로, 내가 달러로 표시된 물건값을 지불할 때는 공식환율로' 계산하면 된다.



이방인의 경제, 여행자의 경제


아르헨티나 물가가 계속 오르고 자국 화폐 가치가 떨어지고 경제가 무너졌다고 한다. 달러를 쓰는 여행자 입장에서는 달러 가치가 자고 나면 올라있어 같은 100달러 1장으로 쓸 수 있는 페소가 매일 조금씩 늘어났다.


일주일 전만해도 100달러로 85,000페소어치만큼 재화와 용역을 구입했다면 오늘은 93,000페소가 되었으니 차액 8,000페소만큼 소비 여력이 더 생긴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8,000페소(한화 10,880원)가 생긴 셈이고 두 사람이 4,000페소짜리 점심을 공짜로 먹게 된 거나 다름없다(4,000페소면 식사가 가능함).


아르헨티나 경제의 속은 어떤지 몰라도 겉으로는 잘 굴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트에 물건도 많고 특히 농축산물은 질좋으면서도 저렴했다. 정육점 쇠고기 1킬로는 우리돈 7천원이면 구입할 수 있고 1만원으로 장을 보면 향 진한 말백 와인 1병을 포함해 며칠치 식재료를 살 수 있다.


아르헨티나 마트에서 장보기(한국돈 1만원어치)


가장 놀라운 건 대중교통 요금이었다. 교통카드 1장을 760페소에 구입해 1,000페소를 충전시켜 며칠 째 쓰는 중이다. 편도 요금이 버스는 약 70페소, 지하철은 약 90페소였다. 한 번 타는 데 우리돈 140원이 안되는 요금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버스와 지하철 시스템도 잘 갖춰진 편이라 이 요금으로 어떻게 운영을 하나 싶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선거 결선 투표가 오늘 11월 19일 이뤄진다고 한다. 현 정권의 경제 수장이었던 후보와, 정부 부처를 축소하고 자국 화폐를 달러로 바꿔 물가를 잡고 경제를 안정시키겠다는 후보가 맞붙는다고 한다. 누가 되든 하루속히 아르헨티나 경제가 살아나고 사람들의 살림살이도 나아지길 바란다.


대통령 최종 선거일(11월 19일) 전날 저녁8시부터 25시간 금주령(식당과 마트에서 술판매 금지)이 내려졌다. 마트에서 와인을 집었다가 다시 내려놓음.


나같은 여행자들은 어차피 돈 쓰러 온 사람들이다. '현지 경제 불안으로 인한 덤' 없어도 얼마든지 여행할 수 있으니 이제 암환율도 안정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암환율이 아예 없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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