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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Nov 19. 2023

칠레 가서 호갱 된 여행자

해외여행은 멀쩡한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 모국에서 고등교육받고 전문성 가진 사람으로 몇십 년을 산 사람해외에 갔다고 치자. 남의 나라에 발을 딛는 순간, 그 나라 말과 글을 모르는 문맹자로 전락하고 버스와 지하철을 탈 줄 모른다. 당에서는 주문도 못하고 현지돈 주고받기도 서툴다.


불편하기만 한 게 아니라 금전적 손해도 당한다. 내 경험을 예로 들어보자. 10여 년 전 필리핀에서 트라이시클 요금을 깎아서 반을 내고 탔는데 다음날 알고 보니 처음 부른 가격이 통용 요금보다 10배나 더 높았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화장실 20배 비싼 요금으로 이용한 적도 있다. 예를 들어, 화장실 요금이 한화 100원이라면 2천 원을 냈다.


이런 걸 여행자들은 '이방인 수업료'라고 치고 빨리 떨쳐버리려고 애쓴다. 보통 새로운 나라에 처음 들어갔을 때 일어나는 일이다.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에 이어 남미 5번째 여행국인 칠레에 들어갔다. 칠레는 남미에서 물가가 제일 비싼 나라라 꼭 가야 할 곳만 돌고 최대한 빨리 빠져나오는 게 여행 비법이라고 들었다.


투어비도 교통비도 저렴했던 볼리비아에서 육로로 칠레 아타카마(San Pedro de Atacama)로 넘어갔더니 더 비교되어 진짜 비싸게 느껴다. 아타카마 사막은 대중교통이 없어 모든 여행지를 투어로만 가야 했다. 여행사가 많았지만 일일이 둘러보기도 힘들고 볼리비아 경험상 투어사마다 가격이 거의 같길래 한 곳에서 3일 치 투어를 예약했다.

                                                   

사방이 사막인 곳에 오아시스 마을 아타카마가 있다. 이곳만 풀과 나무가 자라는 게 신기하다.

                                                                           

아타카마 동네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 세하르 호수(Laguna Cejar), 푸리타마 온천(Termas de Puritama)' 세 곳투어 요금이 각각 4만, 4만, 3만이고 1인당 총 11만 페소라고 했다. 깎아주는 대신 '별 관측 투어'를 추가해 주면서 12만에 해준다고 해서 두 사람분 24만 페소를 결제했다. 숙소에 와서 여행 정보를 찾다 보니 내가 원래 하려던 투어 3개 7만이 8만에 가능한 것이었다.


아타카마 다운타운이자 여행자 거리


순간 현타가 왔다. '나? 칠레 와서 호갱 된 거야?' 무조건 깎았어야 했다. 원래 하려던 것 3개를 1인당 8만에 했어도 둘이 합해 8만 페소는 절약된다. 별 투어는 볼리바아에서 했기 때문에 굳이 안 해도 됐다. 8만 페소면 우리 돈 12만 원! 잠시 방심에 큰돈을 손해 봤다고 생각하니 속이 쓰렸다.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 달의 계곡이라 이름 붙은 세계 여러 지형 중 가장 이름과 닮았다.


세하르 소금 호수 주변. 흰색은 소금 결정.


바닷물보다 몇십 배나 염도 높은 이곳 세하르 호수에서 수영을 즐긴다.


게다가 이 투어요금은 입장료 제외이다. 입장료는 현금으로 투어사에 미리 냈다. 첫 투어인 달의 계곡에 다녀와서 뒤늦게 알았다. 60세 이상은 50% 할인된다는 것을(남편은 여기에 해당). '우린 할인 못 받았는데?' 여행사에 이야기했더니 온라인으로 이미 일반요금을 지불했기 때문에 환불해 줄 수 없다고 했다. 다음 날 갈 온천은 할인이 되느냐고 물으니 할인 자체가 없다고 해서 여행사 직원에게 또 일반요금을 냈다.


그런데 실제로 온천에 가니 떡하니 연장자 50% 할인 요금표가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여행사 직원이 몰랐을 리가 없다. 물정 모른다고 외국인을 봉 취급하다니! 투어 후 입장료 사진을 보여주고 환불을 요구했다. 입장료가 3만 페소니 15,000페소(한화 22,000원)를 돌려받았다. 더 이상 둘러댈 핑계도 없는지 순순히 돈을 내주었다.


온천 입장료 안내판(일반 3,000페소, 60세 이상과 어린이 15,000페소)


아타카마는 칠레 북부 사막 여행의 중심이다. 이름처럼 달 표면을 닮은 달의 계곡, 염도 높은 소금 호수, 간헐천 등 독특한 사막 지형들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여행자들이 모여든다. 지구상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으로 알려져 있고, 지난 4,000년 동안 비가 한 번도 오지 않은 땅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아타카마에서 칼라마 가는 길. 100킬로 넘는 거리가 가는 내내 이런 땅의 연속이다.


칠레에서는 소도시 동네 구멍가게도 카드 결제가 잘 되었다. 그럼에도 아타카마에서는 적지 않은 금액의 입장료를 현금으로만 받았다. 입장료 안내판이 없는 곳도 많았고 입장료 티켓을 주지 않아 실제 입장료가 얼마인지 알 수도 없었다.


지역 여행사의 횡포인지 아타카마는 투어비 너무 비쌌다. 반나절 투어에 입장료를 포함해 1인당 10만 원이 훌쩍 넘었고 여행 상품을 너무 쪼개어 놓아 투어비도 많이 나갔다. 입장료 운영도 투명하지 않고 연장자 할인 안내도 없었다.


볼리비아와 대조되었다. 볼리비아는 입장료가 거의 없고 투어가 합리적으로 설계되고 투어비는 눈물겹도록 저렴하다. 사막 지대는 볼리비아와 칠레에 걸쳐 펼쳐져 있다. 이렇다면 굳이 아타카마에 머물면서 여행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누가 나한테 자문을 구한다면 볼리비아를 거점으로 사막 여행을 하고 아타카마에서는 가능한 한 짧게 머물라고 하고 싶다. 아니,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칠레 관광청에 접속해 글이라도 올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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