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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Feb 09. 2024

도마 한 상이 통째로 나갑니다

세계여행, 식탁일기(25) - 이탈리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의 관광명소인 셀라론 계단(Escadaria Selaron)에서 부다페스트에서 온 헝가리 부부를 만났다. 리우가 우리 여행의 막바지 도시이고 며칠 안에 로마를 경유해 귀국할 예정이라고 했더니 로마에 가면 꼭 먹어보라며 두 가지 음식을 추천해 주었다. 하나는 피오렌티나 스테이크이고 또 하나는 호박꽃 요리였다.


일면식도 없는 그들의 성의가 고마워서 로마와 피렌체에서 추천 메뉴를 찾아다녔다. 로마 여행이 끝났고 나도 추천받았으니 추천 나눔을 해야겠다. 다행히도 꼭 추천하고 싶은 이탈리아 음식이 세 가지나 생겼다.

 


피렌체식 스테이크, 피오렌티나


먼저, 추천받은 메뉴 '피오렌티나 스테이크(Bistecca alla Fiorentina)'의 재추천이다. 피오렌티나 스테이크는 토스카나 지방의 피렌체식 스테이크란 뜻이고 우리가 한 번쯤 들어본 티본스테이크의 원조라고 한다. 티본스테이크(T-bone Steak)는 척추뼈를 가로로 잘랐을 때 안심과 등심이 붙어있는 부위로 T자 모양의 뼈가 보인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피렌체 식당들은 피오렌티나 스테이크를 대개 1kg 단위로 팔았다. 남편과 둘이서 1kg을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다 못 먹으면 싸 오면 되지'라는 각오로 식당에 갔다. 마침 웨이터가 500g도 판다고 하면서 주방에서 500g의 생고기를 가지고 나와 보여줬다.


피렌체에 가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맛, 피오렌티나 스테이크


2cm는 넘어 보이는 두툼하게 구운 스테이크는 굵은소금 몇 알만 뿌려져 있었고 소스나 가니쉬(garnish, 곁들이는 야채) 따윈 없었다. 처음 한 점을 먹 바로 후회했다. 1킬로 그냥 시킬걸. 고기가 익으면 수축해 작아지는 데다가 고기를 가로지르는 대형 T자의 뼈 무게를 감안하지 못했다. 아무 인위적이 맛이 가해지지 않은 채 굽기만 했을 뿐인데 고기는 육향과 가두어진 육즙만으로 훌륭한 맛을 내고 있었다. 10개월간 여행하면서 먹은 스테이크 중 단연 최고였다. '피오렌티나, 둘이서 1킬로 충분히 먹을 수 있습니다. 그냥 시키세요'



생고기로 채소를 싸 먹어요, 카르파치오


우리나라 사람들만 생고기를 즐기는 것이 아니었다. 신선한 쇠고기로 만든 육회나 뭉툭하게 썰어 내는 경상도식 뭉티기에 비할만한 요리가 이탈리아에도 있으니, 비프 카르파치오(Beef Carpaccio)이다. 카르파치오는 육류나 해산물 날 것을 얇게 썰어 레몬즙과 올리브유를 뿌려 먹는 요리로 '안티파스토(antipasto)'라고 해서 본 식사 전에 전채요리로 즐긴다.


접시 위에 핀 선홍빛 꽃 한 송이, 쇠고기 카르파치오(Beef Carpaccio)


배부르지 않게 식전에 즐기는 와인 단짝, 카르파치오


카르파치오는 누구라도 따라 할 수 있는 초간단 요리다. 얇게 저민 쇠고기 안심을 접시에 돌려 깔고 루꼴라 같은 녹색 채소와 파미에르산 치즈를 올리고 올리브유와 레몬즙을 뿌린다. 차가운 요리 가열도 필요 없다. 어떻게 먹냐고요? "고기에 채소를 싸서 먹지요."



도마째 나오는 요리


제주도 돔베 고기를 아시나요? 제주 말로 '돔베'는 '도마'란 뜻으로 도마 위에 썰어져 나오는 돼지고기 요리를 말한다. 이탈리아에도 '도마(Tagliere) 요리'가 있다. 숙소에서 몇 걸음 안 간 곳에 캐주얼한 식당이 있길래 늦은 저녁을 먹으려고 들어갔다.


'음료 1잔 포함 TAGLIERE가 12유로'란 글자에 꽂혀 주문했다.


이탈리아도 처음인데, 첫 식사라 메뉴판이 낯설기만 했다. 모르면 1번을 시켜야지. 메뉴판 맨 위 큰 글씨 'Tagliere Misto'가 눈에 확 들어왔다. 그동안의 여행 짬밥으로 추측건대 여러 가지가 섞인 타글리에레(Tagliere) 요리쯤일테고 뭐가 나올지 진짜 몰랐다. 외국 식당에서 음식을 시키면 그 자체가 서프라이즈 게임이 될 때가 많다. 특히 어떤 나라에 입국해서 먹는 첫 식사는 더더욱 그랬고 성공한 적도 거의 없었다.


빵과 음료를 포함한 2인분의 타글리에레가 15유로라면 믿어지는가.


주문한 타글리에레커다란 나무 도마에 생햄 프로슈토(Prosciutto)과 살라미, 치즈, 아란치니(Arancini), 브로체타, 가지와 오이, 당근이 화려하게 차려져 나왔다. 이건 뭐 로마의 성공 입성을 축하하는 팡파르(fanfare) 수준이 아닌가. 더 놀라운 건 두 사람 식사로 부족함 없는 이 도마 한 상이 음료 포함, 15유로! 타글리에레(Tagliere)가 도마란 뜻인 줄 그때까지도 몰랐다.


타글리에레 베가노(Taglere Vegano, 채식주의자의 도마) 한 상 차림(12유로)


한번 성공한 타글리에레는 또 다른 타글리에레를 불렀다. 며칠 후 다른 식당에서 주문한 요리 이름은 '타글리에레 베가노(Taglere Vegano, 채식주의자의 도마)'였다. 야채 한 상이 빵 두 조각과 함께 나왔다. 구운 가지, 구운 호박과 야채 볶음 세 종류가 나왔는데 하나같이 우리 입맛에 맞아 깜짝 놀랐다. 밥만 넣고 비비면 바로 비빔밥이 될 나물볶음이었다. 생야채 샐러드를 넘어 야채를 이렇게 볶아 숙채로 먹는 조리법이 우리 한식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누가 이탈리아에 처음 간다면, 재료와 조리법의 스펙트럼이 넓은 이탈리아 메뉴 중 뭘 고를지 나처럼 허우적거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일단, 위 세 음식부터 찾아 먹어보라고 하고 싶다. 맛있는 것들의 격전지 이탈리아에서는 하루하루 날을 넘길 때마다 남은 끼니 수를 헤아렸다. 그 많은 피자와 그 많은 파스타는 언제 다 먹어보나. 아니, 당장, 피오렌티나 스테이크 설욕하러 1킬로짜리 스테이크 먹으러 가야할텐데...




여행지에서의 한 끼 식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음식을 먹는 즐거움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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