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의 숙소는 탁심 광장에서 가까웠다. 광장에서 숙소로 갈 때마다 길 주변의 식당들을 곁눈질하면서 걸었는데 아침 전문 식당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무슨 특별한 걸 아침으로 먹길래 아침 전용 식당이 따로 있을까?
유럽 여러 나라의 조식 열전
유럽의 조식 문화는 크게 두 가지, 유럽식과 영국식으로 나뉜다. 유럽 사람들은 빵과 커피 한 잔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는다. 프랑스는 크로와상이나 팽오쇼콜라(Pain au Chocolat)와 커피, 스페인은 으깬 토마토를 구운 빵에 발라먹는 '판 콘 토마테(Pan con Tomate)'를 커피와 먹는 식이다.
프랑스의 흔한 조식, 초콜릿빵인 팽오쇼콜라와 커피
반면에 영국과 아일랜드는 빵과 커피 외에 달걀 프라이, 소시지, 베이컨, 콩을 더해 아침을 실하게 먹는다. 카페에서 다른 단품과 별도로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란 독립된 메뉴를 내고 대개 낮 12시까지 판다. 그러니 유럽에서 숙소를 고를 때 기왕이면 잉글리시 블랙퍼스트를 준다는 호텔을 가야 아침에 달걀 하나라도 먹게 될 것이다.
런던의 동네 카페에서 먹었던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이스탄불에 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튀르키예는 아침식사를 풍성하게 먹는 정도를 넘어 '아침부터 아주 작정하고 먹는 문화'를 가진 곳이었다. 수 백종의 케밥과 달콤한 튀르키예후식(Turkish Delight) 등 먹을 것이 넘쳐나는 이스탄불에서 여행자를 아침부터 황홀하게 하는 것은 전통 조식 '카흐발트(Kahvalti)'였다.
아침식사를 가리키는 '카흐발트'는 '카흐베(Kahve, 커피)'와 '알트(Alti, 아래)'가 합쳐진 말로 '커피를 마시기 전에 먹는 음식'이란 뜻이라고 한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모닝커피를 마시기 전에 어떤 음식을 먹을까?
황제의 아침상, 튀르키예 아침 정식
숙소 가까이에 있는 카흐발트 식당에 갔다. 달걀, 치즈, 토마토와 오이, 절인 올리브, 각종 이름 모를 잼과 소스가 크고 작은 접시에 차려졌다. 빵과 홍차는 무제한이다. 도대체 몇 첩 반상이란 말인가! 이 모든 음식을 아침에 커피 마시기 전에 먹는다고?
2인분의 카흐발트(튀르키예식 아침 식사), 빵은 사진에 찍히지도 못함.
메뉴 중 가장 특별한 것은 카이막(Kaymak)이었다. 우유를 장시간 끓여 지방을 굳혀 만든다는 카이막은 꿀에 찍어 먹거나 빵에 발라 먹는다. 고소하고 순수한 우유 맛과 부드러운 질감 덕분에 모 방송에서 백종원 씨가 '천상의 맛'으로 표현했다.
달랑 구운 빵 하나와 커피만 먹는 유럽식 조식과는 소위 '클래스'가 다르다. 영국식 조식이 아무리 풍성하다 해도 한 접시면 끝이고, '먹는 걸 하늘로 여긴다(民以食爲天)'는 중국도 만두와 죽, 요우티아오와 또우장 등 아침은 간편식으로 먹는다.
튀르키예는 양과 가짓수도 놀랍거니와 격식마저 갖추었다. 여태껏 여행한 그 어떤 나라보다 아침을 고급지게 먹는 나라다. 부잣집 친구 집에 놀러 온 기분이다. 실제로 튀르키예 사람들은 집에 손님을 초대해 아침을 같이 먹거나, 식당에서 조식을 같이 먹기도 한다고 한다.
사실 카흐발트 그 자체가 특별한 요리는 아니었다. 치즈와 달걀이 갖는 풍부한 단백질, 오이와 토마토 및 올리브의 신선한 야채, 빵과 차로 구색을 갖추어 정성껏 차려내지만 식사 내용은 한없이 담백하다.
심플한 구성으로 나온 1인분의 카흐발트와 토마토달걀요리, 메네멘.
숙소 앞의 카흐발트 맛집. 세 번 갔었는데 언제 가도 현지인들 틈에서 1시간은 대기해야 하는 곳.
이스탄불은 오스만 제국의 번영이 지금도 이어지는 도시였다. 튀르키예는 땅이 비옥하고 농산물이 풍부하다. 양고기와 쇠고기, 해산물과 각종 향신료 등 식재료가 풍부하고 요리법이 발달했다. 화려함과 달콤함의 극치를 자랑하는 전통 디저트 전문점이 성업 중인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튀르키예는 자국의 먹거리로 자국인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농산물 자립도 100%인 나라라고 한다.
아침을 먹은 식당은 카라쿄이 언덕에 있었다. 탁 트인 시야 아래로 보스포루스해협의 바다와 화려한 첨탑의 모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싱그러운 아침 햇살 아래 카흐발트 한 상을 받으니 오스만 제국을 호령하던 술탄이 부럽지 않다.
누구라도 튀르키예 여행을 간다면 케밥 순례만 하지 말고 카흐발트 체험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누구라도 낯선 여행자를 황제처럼 대접하는 나라, 튀르키예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