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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Aug 11. 2021

나의 여행 학교, 리장 가는 길

중국은 만만한 나라가 아니었어

결국 야딩(亚丁[Yàdīng])행을 접었다. 야딩은 나의 버킷리스트 영순위로 남게 되었다. 청두에서 캉딩(康定[Kāngdìng])까지 갔다가 야딩행을 포기하고 1박 2일 만에 다시 청두로 돌아온 우리는 판즈화(攀枝花[Pānzhīhuā])를 거쳐 리장(丽江[Lìjiāng])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청두-판즈화-리장 위치 개념도 
<2013년 1월의 여행 여정>
원래 계획    : 청두 - 캉딩 - 야딩 - 샹그릴라 - 호도협 - 리장 - 따리 - 웬모 - 청두 
변경된 일정 : 청두 - 캉딩 - 청두 - 판즈화 - 리장 - 호도협 - 따리 - 웬모 - 러산따포 - 청두



청두에서 판즈화로 가는 침대 기차를 두장 끊었다. 길 나선 지 3일 만에 출발선 청두에 다시 섰다. 심호흡을 하고 전열을 가다듬어 14시간 여정의 기차에 올랐다. 때론 한 치 앞을 내다볼 줄 모르는 건 축복이다. 이때만 해도 청두에서 판즈화까지만 가면 이 장거리 길 고생이 끝날 줄 알았으니까.


청두 기차역 대합실(2013) ⓒ위트립



청두에서 캉딩 가는 야딩행 버스와 비교하니 4인실 침대 기차는 천국이었다. ‘중국에도 이렇게 안전하고 쾌적한 탈 것이 있었단 말이지!’ 중년 커플인 남편과 나는 윗 침대 두 칸. 아래 두 칸은 중국인 20대 커플이다. 마치 낯선 사람 둘과 호텔방 한 개에 숙박하러 온 기분이었다. 위층 침대는 많이 흔들리고 화장실 들락날락거릴 때도 불편했다. 한 칸 아래가 천국이었다. 편안함에 이리도 빨리 익숙해져 그새 남의 천국을 넘보다니.

     

침대 기차 4인실(루안워)의 캐빈 안과 객실 통로, 각 캐빈은 문이 달려 있음. ⓒ위트립



앞으로 장장 14시간의 기나긴 시간을 어떻게 때우나? 스마트폰도 잃어버려 중국 친구들처럼 폰 들여다보며 놀 처지도 못되고, 딱히 할 일 없는 나는 기차표를 들여다보며 여행중국어를 공부했다. 자세히 보니 큐알코드도 있고 여권번호도 찍혀 있다. 신원 검사가 철저한 중국 기차에서 매표 때나 탈 때나 여권은 필수다. 식사 시간이 되어 따뜻한 도시락을 팔길래 저녁으로 사 먹었다.

      

기차표 중국어, 기차 내에서 파는 도시락(20위엔=한화 3,600원)



어쨌거나 시간은 흘렀고 새벽 4시에 승무원이 깨워줘서 판즈화 역에 내렸다. 리장을 가려면 판즈화 버스터미널까지 가야 했다. 칠흑 같은 새벽에 택시 외 다른 교통수단이 없었다. 우리를 태운 택시는 인적 없는 외곽도로를 끝도 없이 달렸다. 둘이 세트로 어디 팔려가는 건 아닌지 불길한 상상에 휩싸여 배낭을 끌어안고 꼼짝않고 30분 넘게 갔을까? 택시가 우리를 터미널에 내려준 시각은 *새벽 5시였다. 터미널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판즈화까지 가면 리장은 거저 가는 줄 알았다니 내가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몰랐나? 터미널에서 또 한차례 도전을 맞닥뜨렸으니 판즈화에서 리장까지 소요시간이 '3시간 반'이 아닌 '8시간'이란 사실이었다. 분명 인터넷 사전 조사도 그렇고 지도상 거리도 딱 서너 시간짜리 같아 보였는데... 게다가 판즈화에서 리장 가는 첫차는 6시가 아닌 7시라고 한다. 한겨울 새벽에 밖에서 두 시간을 떨어야 할 판이다.

      

아침도 먹을 겸 시간도 때울 겸 찾은 터미널 옆 식당은 난방이 안되었다. 지붕과 3면의 외벽만 있는 식당에서 냉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쌀국수를 시켜 먹고 그곳에 죽치고 있었다. 추위에 떨었지만 그래도 앉아있을 수 있는 게 어딘가. 온기까지는 아니어도 바람만 막아줘도 더 바랄 게 없었다. 

     

그렇게 더디던 2시간의 지옥의 시간도 가기는 가더라. 리장 가는 첫차 7시 차에 올라타니 천국이 따로 없다. 차가 작다고 불평할 겨를도 없이 자리에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한참을 타고 가니 해가 뜨고 하늘이 밝아 왔다. 


비포장은 아닌데 길도 좁고 고갯길도 많고 노면도 울퉁불퉁했다. 청두에서 캉딩 가는 길에 뒤지지 않는 '제2의 죽음의 길'이다. 악취와 불결함에 몸서리쳐지는 화장실에 돈까지 줘가며 두세 시간마다 꼬박꼬박 들러주었다. 점심 후 버스를 타고 이동, 또 이동이었다. 차창 밖 설산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멋진 경치도 잠깐이었다. 고산 증세가 도졌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도대체 굽이굽이 돌아가는 이 고갯길은 언제나 끝이 나려나. 아아! 리장이여~” 

     

판즈화에서 리장 가는 길. 깡촌들을 많이 지나고 설산도 보인다. ⓒ위트립


여긴 어디? 휴게소의 공공화장실(2013). 남녀 표시는 선명하네. 사용료 1위엔(한화 180원). 요즘도 이런 화장실이 있을까?



리장 터미널에 와서 알고 보니, 리장에서 판즈화까지 거리가 287km였다. 9시간 반이 걸렸다. 이렇게 오래 걸리고 이렇게 험할 줄 알았다면 가지도 않았을 길이다. 그전날 청두 역에서 판즈화 역까지의 기차 이동까지 합하면 청두에서 리장까지 기차와 버스로 꼬박 26시간이 걸린 셈이다. 이것이야말로 대륙 스케일?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 중국이니까 벌어진 거다.

     

판즈화에서 리장은 287km 거리이다. ⓒ위트립 


어둑해서 도착한 리장 버스터미널 ⓒ위트립



덕분에 나의 중국 여행의 내성은 이때 다 만들어졌다. 쓰촨 윈난 여행 첫 4일 동안, 방안에 얼음이 어는 '나의 여행 인생 최악의 숙소'를 만났고, 캉딩에서 폰 분실로 공안국을 다녀왔고, 말로만 듣던 고산증의 실체를 겪었다. 침대 기차는 물론 '중국 오지의 장거리 버스 타기' 실전까지 두루 다 통과하고 나니 나는 어느새 '여행학교' 수료생이 되어 있었다. "중국아 게 섰거라, 내가 간~~~다~~~"




*[여행 정보] 중국은 전역이 베이징 시간을 쓴다. 중국은 동서로 영토가 넓어 국제 표준에 의하면 5개의 시간대(UTC+5시~UTC+9시)에 걸쳐 있지만 전 지역이 동경 120°에 해당하는 베이징 표준시(UTC+8시)로 통일해 쓴다. 판즈화(경도 101°E)는 쓰촨의 서쪽 지역이고 실제로 베이징과는 1시간 시차가 난다. 판즈화의 새벽 5시는 그 지역 표준시로 적용하면 4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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