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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트립 Aug 07. 2021

캉딩(康定)에는 왜 갔을까?

어쩌다 캉딩1박2일(2)

     

새벽 5시 반에 숙소에서 나와 캉딩(康定[Kāngdìng]) 터미널로 갔다. 어제 탔던 버스를 다시 타고 캉딩에서 따오청까지 가는 날이다. 캉딩에서 따오청이라고 적혀있는 버스를 탔더니 기분이 이상하다. 내려서 물어보니 다른 버스를 타란다. 컴컴한 새벽에 사람 많고 차 많은 버스 터미널을 헤집고 다니기를 한참만에 딴 버스에 올라타니, 어제 그 사람들이 그대로 앉아 있었다. 운전석 바로 뒤의 우리 자리도 고스란히 비워져 있었다.  

    

이제야 겨우 내 차 내 자리로 왔구나. 안도의 숨을 내쉬며 왼쪽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이 허전함은 무엇인가? 아 있어야 할 게 없었다. 바로 핸드폰. 중국 여행 오기 한 달 전에 구입한 나의   스마트폰. 스마트하게 여행하리라 폰에 저장한 여행 정보, 지도, 중국어 사전, 여권 사진도 함께 날아가는 것인가? 한 달짜리 여행의 본격 출발 하루 만에 폰을 잃어버린 것이다. 


버스 내 자리 주변과 통로를 샅샅이 찾아보았다. 차 안의 한 승객이 걱정되는지 자기 폰을 건네며 전화해보란다. 처음 탔던 버스에 다시 가서 좌석 주변을 뒤졌다. 소용이 없었다. 분명 숙소에서 출발 직전에 왼쪽 주머니에 넣었다. 곧 버스는 출발한다. 출발 5분 전이다, 결정해야 한다. “버스냐 폰이냐” 폰을 포기하고 버스를 탈 건지, 오늘 따오청행을 포기하고 폰을 더 찾아볼 건지, 결국 버스를 보냈다.    

 

숙소로 다시 돌아가 방을 뒤지고 터미널까지 걸어온 길도 꼼꼼히 훑었지만 폰은 없었다. 포기가 안되었다. 폰을 잃어버린 게 아니라 도난당한 것일 거란 쪽에 무게가 실렸다. 그렇다면 가장 유력한 장소는 컴컴한 새벽의 복잡한 버스 터미널이다. 캉딩 버스터미널 사무실에 가서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사무실 직원이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한참만에 공안 2명이 경찰차를 타고 나타났다(우리나라 경찰 출동 시스템과 똑같았음). 짐작컨대 분실 내지 도난 신고가 된 것이었다.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대화하려니 말이 잘 안 통한다. 필담이 동원되었다.     

캉딩 버스터미널 사무실에서 공안과 주고받은 필담 ⓒ위트립
공안: 누구에게 도난당했냐? 아니면 어딘가에 두고 잊어버렸나(잃어버렸나)?
나: (모르겠다.) 나는 (도난에 대한) 증명서가 필요하다.(추가로 영문으로 된 게 필요하다고 했더니)  
공안: 대사관에 전화해서 번역 어쩌고 저쩌고...           


보험사에 제출할 도난 증명서를 끊어달라는 나의 요구에 알겠다고 하며 우리를 자기들이 타고 온 경찰차에 태웠다. 우리가 간 곳은 관할 공안국이었다. 난로를 쬐며 몸을 녹이고 기다리니 이것저것 물어가며 서면 하나를 작성해주었다. 나는 그게 ‘도난 증명서’인 줄 알았다. 그러나 경황없는 중에 받아 온 종이는 그다음 날 확인해보니 '분실 확인서'였다. 여행자 보험 휴대품 보상에 ‘분실’은 안되고 '도난'만 된다는데 이걸로 보상이 될까 싶었다.     


야딩을 포기한 대가로 손에 넣은 Police Report  ⓒ위트립


새벽 6시도 안되어 터미널에서 폰 분실하고, 찾는 소동을 치르고, 분실 신고하고 공안국까지 다녀왔다. 날이 밝기도 전에 참 많은 일을 겪었다. 이 날따라 캉딩에 아침부터 눈발도 날리고 춥다. 배도 고프다. ‘아! 이 야딩행을 감행해야 하나’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빡빡한 일정에 폰 분실로 하루를 까먹었다. 만약 야딩에서 폭설이나 고산증 때문에 갇히게 되면 이후 일정이 꼬일 테고 남편의 귀국에 지장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급습해왔다. 캉딩의 냉동 숙소에서 하룻밤 묵고 보니 앞으로 갈 따오청과 야딩, 샹그릴라에 이르기까지 길 험하고 추운 건 이것 이상일 것 같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게 무슨 여행인지 극한 체험인지 구분이 안 갔다.

     

눈발 날리는 캉딩 거리. 캉딩 여행 왔으니 캉딩 사진 한 장은 있어야지. ⓒ위트립


결국 야딩행을 접었다. 연쇄적으로, 야딩과 샹그릴라를 거친 후 리장으로 가려던 계획은 전면 수정되었다. 둘 다 빼고 청두로 다시 돌아가 곧장 리장으로 가기로 했다. 이로써 샹그릴라로 지명 붙은 곳 샹그릴라(중덴)와 내 맘속의 샹그릴라 후보지 야딩을 둘 다 가보려던 계획은 야딩 가는 길 1/3 지점인 캉딩에서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 애초의 계획 자체가 “무리 데스요!”였는 지도 모른다.


캉딩 터미널에서 청두로 돌아오는 버스를 구해 탔다. 지난 48시간의 여정을 요약하면, '청두에서 8시간 버스 타고 캉딩 가서, 하루 자고, 폰 잃어버리고, 공안국 다녀오고, 다시 8시간짜리 버스를 타고 청두로 되돌아왔다.'이다. 그럼, 난 1박 2일 캉딩을 여행한 거네? 근데, 캉딩에는 왜 갔을까?




% 뒷이야기 : 귀국 후 여행자 보험사에 문의했더니 공안국에 신고하고 받은 서류만 있으면 보상 가능하다고 했다. 휴대품 보상 30만 원짜리 보험 상품이었지만, 한 품목당 20만 원 한도이고, 휴대폰은 20만 원까지 보상된다고 했다. 보상받은 20만 원으로 잃어버린 폰과 똑같은 모델의 중고폰을 사서 3년을 썼다. 전래 동요는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로 가던데, 나는 "새 폰 주고 헌 폰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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