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만들었다, 책을 쓴 게 아니라

책한권 뚝딱(1)

by 위트립
책을 만들었다, 책을 쓴 게 아니라


최근에 책 한권을 만들었다. 책을 쓴 게 아니라 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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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직한 동료선생님을 만나 차한잔 하며 근황을 나누던 때였다. 그분은 나와 10년가까이 나이차이가 나는 대선배교사였지만 둘다 여행매니아라 만나면 늘 할 얘기가 많았다. 그날도 늘그렇듯이 여행 수다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가 그 선생님이 내게 A4 종이 뭉치를 꺼내 놓으며 작년 2월에 아프리카 여행 다녀온 글이라며 읽어보라고 하셨다.


난 마침 전자책만들기를 해보려던 차라 그 여행기를 전자책 만드는 실습 교재로 쓰겠노라고 했다. 결국 내가 공부해서 전자책으로 한권 만들어 드리겠노라고 약속아닌 약속을 해버렸다. 남과의 약속은 곧 죽어도 지켜야하는 성미라 내심 부담도 되었다. 큰소리 치고 못하면 어떡하나? 걱정도 되었다.



책만들기 실전


인터넷에서 전자책 강좌를 찾아 들었는데 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동네 도서관에서 '소소한 책만들기'강좌를 한다는 걸 알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신청하러 갔더니 정원이 다 차서 마감이란다.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첫강의가 있는 날 강좌 장소로 찾아가서 맨 뒤에 앉았다. 내 예상대로 난 정식 수강생이 되었다. 도서관 홍보 부족으로 책쓰기 강좌인 줄 알고 신청한 사람이 꽤 있었는지 결강자가 많았고 난 그날부로 정식 수강해도 좋다는 공식 허락을 받았다.


이렇게 진행된 8번의 강좌 끝에 책이 한권 나왔다. 전자책보다 더 좋은, 아날로그 감성이 폴폴 묻어나는 실물 종이책으로. A4 50매짜리 글 뭉치가 164쪽짜리 책 한권으로 가공되어 세상에 다시 태어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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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들기 강좌는 유익했고 심지어 무료였으니 가성비 무한이요 만족도 최고였다. 강사 선생님은 독립출판에 종사하는 분이셨고 책 발행 전반의 과정과 편집툴을 꼼꼼하게 가르쳐주셨다. 종이책 편집툴인 인디자인(Indesign)을 익히니 마치 장님이 눈을 뜬 것처럼 신세계였다. "아하! 이렇게해서 책이 만들어지는거였구나" 내가 필요로하는 것을 가르쳐주니 얼마나 재미있고 신나는 지 몰랐다.


동기 수강생들은 다들 자기 이름의 책을 만들었는데 나만 유일하게 다른 사람 원고로 책을 만들었다.

살짝 자존심도 상하고 그들이 부러웠다. 그러나 원고없는 설움을 이제와서 어쩌랴.

짧은 시간에 원고 쓸 자신도 없었고 애초에 남의 책 만들어준다고 했으니 이것부터 해결했어야 했다.



책만들기가 내게 준 것


하지만 난 이 책 한권 만들어보기를 통해 얻은 게 많다.


첫째, 책 만드는 일이 내 적성에 딱 맞는 즐거운 일이라는 걸 알았다.

내 앞자리 동료는 자신이 입는 모든 옷을 직접 만들어 입는다. 내 친구는 그림을 그린다. "그래 난 앞으로 난 책을 만들면 되겠구나." 기왕이면 내가 기획하고 쓴 내 글로 작업한다면 더 보람되리라. 또 필요로하는 이가 있다면 남의 책을 만들어줘도 좋겠다.


둘째, 책 한권 내기가 물리적으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A4 텍스트 원고 70쪽만 있으면 사진이 같이 곁들여지는 여행서 250~300쪽짜리는 얼마든지 낼 수있다는 걸 알았다. 편집툴도 어렵지 않았고, 자가출판, POD출판 혹은 출판사 등록 출판 등 출판 노하우도 알게 되었다.


셋째, 글만 있으면 책만드는 건 일도 아니란 걸 알았다.

그러나 정작 가장 힘든건 글쓰기이다. 역설적으로 글쓰기의 강력한 동기를 얻었다. 이달부터 시작한 브런치가 내 글쓰기에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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