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사랑하기
내가 처음 독립 영화를 본 날은 청소년을 탈피하기 직전, 어느 늦은 가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천에서 건대로 먼 여정을 떠났다. 가는 길이 어땠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영화는 늦은 저녁 시간에 시작되었다. 만년 지각쟁이였던 내 친구 덕분에 우리는 영화 시작 직전에야 아슬아슬하게 상영관 안에 입장할 수 있었다. 나의 불확실성 탓에 그곳에서 상영된 영화가 개중에서도 유명한 영화였는지 아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독립영화였던 것은 확실하다.
영화관 안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나와 친구들은 중간에서 살짝 윗자리에 일렬로 앉아 영화를 관람했다. 팝콘도 콜라도 없이, 광고도 없이 단출하게 시작된 영화였지만 나는 순식간에 그것에 몰입했다. 지금은 제목도, 내용도 자세히는 기억나진 않지만 그곳에서 본 영화의 몇 가지 씬만은 아직도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부유하고 있다. 그 영화는 약자들을 그린 영화였다. 정확히는 약자들이 나름대로 행복해지는 결말을 그린 세 편의 영화가 연속으로 상영되었다. 그중 생생하게 남는 영화는 맨 처음에 상영된 몰래카메라를 회사에 설치하고 다니는 남자의 이야기였다.
영화의 결말에서 몰카남은, 이를 눈치챈 여자의 계책에 의해, 화장실에 몰카를 설치하다 송곳과 같은 날카로운 물체에 눈알을 찔리고 만다. 인위적인 효과음이 더해져 소름이 돋았던 장면으로 뇌리에 각인되어 쉽게 잊히지 않는다. 마지막에 상영되었던 영화에서는 수해 지역에 거주 중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피해를 받은 주민이 컨테이너에서 지내는 내용의 영화는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건조하기만 하다. 마치 사막과 같이 주홍빛이 만연하다. 영화가 끝나면 제작자가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떤 질문은 첨예했고 어떤 질문은 놀랍도록 지루했다. 그러나 그 공간에 가득 찬 영화에 대한 정열과 감동은 진득이 남아 나는 그 시간마저 즐기고 있었다. 좋은 추억이다.
그리고 나는 이것을 촉매제로 하여금, 마이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기 시작했다. 베스트셀러보다는 독립 출판을, 웹툰보다는 나만 아는 인스타툰 작가를, 아이돌보다는 인디 밴드를 좋아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영화를 볼 때도 유명한 영화보다는 순위에서 밀려나 상영되는, 영화관도 그다지 배정받지 못한 영화들을 부러 찾아다녔다. 신촌으로, 홍대로, 부평으로. 마이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것이 있는 곳을 왕왕 왔다 갔다. 한편으로 내가 직접 마이너적인 콘텐츠를 생산하기도 했다. 브런치를 시작하고, 뉴스레터를 보내고,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트위터에 사진을 올려 일상을 공유하고. 그러한 소소함 속에서 나오는 작은 관심들에 일희일비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 꿈을 꾸기도 한다. 지금 올린 에세이가 관심을 받아서 자고 일어났더니 1위가 되어 있으면 어떻게 하지? 자고 일어났더니 팔로우가 엄청나게 늘어있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누구나 꾸는 그런 꿈 말이다.
올해 북페어를 나가며, 나는 처음으로 마이너를 좋아한다는 사실에 회의를 느꼈다. 그동안 책이 안 팔린다 안 팔린다 하는 것을 듣기만 했지 실제로 체감해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부스를 신청하고 나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그러나 내가 이것으로 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없었다. 첫날을 겪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래도 원금은 회수할 수 있으리라는 창대한 꿈을 꾸었다. 그러나 첫날 소득 0원을 보자마자 직감했다. 기대를 하지 않아야겠다고. 부스비라도 벌겠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팔아봤지만 구입하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그러나 판촉마저 하지 않으면 수익은 정말 0. 그래서 최선을 다해 홍보했다. 화장실도 최소한으로 가고 밥도 굶어가며 책과 굿즈를 팔았다. 3일간의 북페어를 마치고 바로 다음 주에 나간 북페어 하루를 더해 삼십만 원이라는 수익을 벌 수 있었다. 그중 내가 받을 수 있는 수익은 고작 3만 원이었다. 부스비도 벌지 못했다.
마이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이너에 파고들었지만 역시나 현실은 가혹한 법. 마이너를 동경하며 메이저를 꿈꾼다니, 오만이었다. 나와 같이 사라져 간 창작자들이 얼마나 될까. 분명히 많겠지. 회의감이 몰려와 이리저리 휩쓸리던 찰나에 강의를 듣게 되었다. 강사님은 수업을 삼십 분 만에 끝내고 이런저런 질문을 받고 있었다. 충동적으로 손을 들었다. 강사님, 메이저가 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그분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저야 모르죠.
메이저가 아니면 향유해주지 않는 사람들의 이중성에 치가 떨려 잠시 현실에 집중했다. 다른 사람들은 나같이 마이너를 소비하지 않음에 실망을 느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떤 문장을 만나게 되었다.
머리가 멍해지다가 이내 정신이 들었다. 그래, 나는 그동안 반짝이는 실패들을 경험했던 것이구나. 나는 실패를 벌고 그것을 통해 나아지고 있었는데.
메이저를 좋아하는 만큼 마이너를 사랑한다. 그것은 내가 그들의 작품을, 실패를 찬란하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찬란함이 모여 언젠가 빛을 바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게 저물 수도 있지만 그마저도 훗날 나를 구성하는데 지대한 양분이 되리라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별도리 없이 다시 실패를 사랑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운명을 깨닫는다. 흘러가는 실패들을 지켜보고 응원하면서 나는 또다시 마이너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메이저를 보며 느낀 질투를 머금고 자라날 나의 마이너를 좋아한다. 메이저와 마이너는 한 끗 차이. 그리고 알아주지 않을 뿐 모든 마이너는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직시해 다시 마이너에 발을 들일 용기를 얻는다. 사람들이 지나치게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내가 드러나기엔 아직 준비가 더 필요함을 확인한다. 그러니 나의 마이너를 여러분도 사랑해 주세요,라고 도리어 부탁을 드린다. 그리고 이곳에 다다른 이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