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배원 Jul 21. 2024

갓생과 업보

감기처럼 번아웃이 찾아왔다


   일복도 복이라 그런가. 어느 때가 오면 일이 유독 들이닥치는 시기가 특별히 찾아오곤 한다. 딱히 일정한 주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늘 감기와 같이 변함없이 찾아오곤 하는 일복은 가끔 나의 삶에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다만 학생 때는 일복을 불러오는 존재가 선생님, 혹은 학교라는 거대 집단에 의해서였다면, 성인이 되고 난 후 일복을 불러오는 존재는 ‘나’라는 게 조금은 다르다. 성인이 되었다는 것은 모든 일을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성인이 된 이후 일을 벌어오는 사람이 ‘나’인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렇기에 일복이 터졌다는 것은 결국 나의 무책임한 일 벌이기로 인해 업보로 돌아온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셈이다. 내가 만든 업보로 인한 굴레이지만 그와 별개로 휴식은 참 간절했다.



   일복이 터졌다는 이야기를 대학교에 와서 처음 입 밖으로 꺼내게 되었을 때, 주에 4시간씩 자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무언가를 했던 것 같다. 그 시기의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취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일을 수용했고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다. 쓸데없이 책임감이 강하고 완벽주의적 성향이 있어서 모든 일을 잘해보려고 더 몰두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 세상을 즐기지 못함은 물론이고, 침대에 눕는 시간마저 점점 짧아졌다.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서 컴퓨터를 붙잡고 있다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졸음이 밀려오면 머리만 대고 겨우 잠에 들었다. 그리고 몇 시간 안 자고 일어나 오전 수업을 듣기 위해 책상에 앉는 것을 반복했다.


   그때는 비대면 수업이 일상이었지만, 나는 학교에 가야 하는 날도 종종 있었다. 그러면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회의라던가, 글을 쓰는 과제라던가. 혹은 잠이라던가. 학교에 가는 날엔 종일 밥도 안 먹고 일하다가 쫄쫄 굶고 집에 들어와서 새벽에 한 끼를 대신할 요깃거리를 겨우 챙겨 먹고 잠에 들기를 반복했다. 그때의 나는 정말로 몸이 너무 힘들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힘들다는 얘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면 그들 중 절반은 나에게 ‘지금이 아니면 그렇게 일을 하지 못한다 ‘는 논리로 나를 위로했다. 젊음을 불태워 일하는 나를 대단한 사람으로 추켜세우고 다독였다. 어느 날에는 집에 돌아갈 기력조차 없어서 학교 인근에서 자취하고 있는 측근 K의 집에 놀러 가, 방을 얻는 대가로 같이 야식을 먹는데 그런 말을 들었다.


   “너는 진짜 갓생 사는 것 같아. 너 볼 때마다 너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된다?”

   “내가 무슨 갓생이야. 그냥 업보 쌓은 사람이지.”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말을 들은 나는 같이 하하 호호 웃으면서도, 왜 나같이 살고 싶어 하지라는 회의적인 상상을 했던 것 같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일만 하면 하루가 다 가는 일상의 반복인데, 누군가가 부러워할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다는 기분이 생소했다. 이런 게 갓생이라고?



   한 분기가 마무리되면서 나의 바쁜 일들도 얼추 끝이 났다. 그리고 동시에 찾아온 방학에 나는 말 그대로 ’ 겨울잠‘을 잤다. 12시간 자고 일어나는데도 졸려서 낮잠을 자고 밥 먹고 식곤증으로 다시 자고. 잠귀신이 달라붙은 것인지 종일 잠이 찾아왔다. 그렇게 한 달 내내 잠만 자고 겨우 다음 달이 되었을 때야 나는 일상을 회복할 수 있었다. 이런 게 갓생으로 인해 얻는 것이라면 두 번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갓생을 산다는 말을 좋게 볼 수 없다. 나에게 갓생이란 몸을 축낼 때까지 소처럼 일만 하는 것이라는 묘한 편견이 생겼기 때문에.


   이후에 그 시기의 내가 번아웃 상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루를 생산적인 일과로 만들기 위해 몸을 갈았던 결과 소진이 돼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 덤으로 한 가지 이상 증상도 생겼다. 나도 모르게 일정을 강박적으로 짜는 버릇이었다. 항상 될 대로 되는 인생을 살았던 나는 원래 사소한 약속은 머리로 잘 기억하는 사람이었는데 캘린더에 적어놓고 복기하는 삶을 살다 보니 이젠 일정을 적지 않으면 기억을 못 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갓생을 살기 위해 만든 삶의 일정한 규칙들이 오히려 강박을 심어서 그것을 완수하지 못하면 자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도 많은 일을 하다 보니 적지 않으면 까먹는 일이 잦아서 시작한 습관이었는데, 이제는 캘린더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캘린더의 최고 목표치를 달성한 달


 캘린더가 참 묘한 것이,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데 한 번 익숙해지면 떼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것이 나의 이정표가 된 것 마냥 필사적으로 지키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마치 성공이 보장된 이정표와 같이 캘린더 대로 살면 특별하진 않아도 대단한 사람, 소위 말하는 갓생러가 쉽게 될 수 있었다. 그것이 사람들을 갓생에 중독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꽉 채워진 캘린더에 고정된 수많은 일정들을 지키면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감정이 나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채우게 되는 것. 나는 그러한 우월감에 심취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갓생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일을 하며 얼마나 항상성 있는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다. 캘린더가 어느 정도 찼다 싶으면 여유를 가지는, 내가 조금 힘들다 싶으면 유연하게 쉴 수 있는, 다음 계획을 세울 때 조금이라도 신중해질 수 있는 그런 것이 소중해졌다. 몰아세워서 단기간에 많은 업적을 쌓기보다는 순간들이 쌓여 질 좋은 성과를 내보는 것이 기대되었다. 그런 생을, 일상을 보내고 싶어 진다.

작가의 이전글 메이저와 마이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