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취미 #20대워킹맘 #임신일기
임신 33주 차,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져 다양한 취미를 시도하고 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것도 그의 일환으로 시작된 것인데 꾸준히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다.
오늘의 글은 요즘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는 손취미에 대한 것인데, 바로 '십자수'다.
뜨개질은 젊은 층 사이 아날로그 취미로 떠오른 지 꽤 되었는데, 십자수는 여전히 올드스쿨의 느낌이 있다. 주변에 뜨개질로 옷이며 목도리며 뚝딱 만들어내는 친구들은 몇 봤어도 십자수를 즐기는 지인들은 없었다.
나 역시도 태교 겸 아기용품을 준비하며 뜨개질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작년 사내 봉사로 진행했었던 인형 만들기에서 영 실패했던 전적이 있어 쉬이 시작하기 어려웠다. (요즘 뜨개하는 엄마들은 아기 모자도 직접 만들어주던데 그게 정말 귀여워서 언젠가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기는 하다)
내가 십자수를 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 내 기억 속 엄마는 늘 십자수를 했다. 내가 베고 자는 베개와 벽걸이 시계에는 늘 엄마가 직접 뜬 십자수 작품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최근 분가를 하며 한바탕 짐을 정리한 부모님 댁에 방문했을 때, 엄마가 보관하고 있던 십자수 재료들을 발견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실의 양이 상당했다. 나이가 들어 눈이 침침해진 탓에 십자수를 다시 할 것 같지 않아 버리려던 참인데, 막상 남아있는 양을 보니 버리기가 아까워졌다고 한다. 십자수는 뜨개질에 비해 단순하고, 어릴 때 엄마 옆에서 곁눈질하며 잠깐이나마 해봤던 경험이 있어 시간 때울 겸 한번 해볼까 싶어 가져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엄마의 취미를 물려받아 시작한 십자수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잠깐 손가락에 힘을 빼면 바늘에 기껏 끼워둔 실이 빠지기 일쑤였고, 뒤판에서 자기네들끼리 뒤엉켜 버린 실들은 시도 때도 없이 잘라내줘야 했다. 엄마가 할 땐 분명 쉬워 보였는데 이것도 다 요령이 있었던 거다.
그렇게 한두 개의 작은 도안을 망치고 난 후, 슬슬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처음에 실은 어느 정도의 길이로 자르는 게 좋은지, 무슨 칸부터 시작해야 실이 엉키지 않고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지. 손가락 마디가 아플 정도로 며칠 내내 십자수를 잡고 있은 후에야 점점 속도가 붙었다.
실을 십자로 교차해 가며 칸을 채우는 이 행위가 정말 별 것 아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정해진 칸을 채우다 보면 어느새 내가 원하던 그림이 완성될 때 꽤나 뿌듯하다. 이래저래 조합해 본 실의 컬러 조합이 맘에 들고, 이니셜이라도 들어갔다 치면 꼭 나만의 것을 만든 것 같아 자랑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임신 중에 손가락을 많이 쓰면 아기의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데, 근거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은 작은 소지품을 보관할 수 있는 파우치를 만드는 중이다. 목표가 있으니 얼른 완성하고 싶은 마음에 진도가 점점 빨라진다. 내 마음에 드는 그림들로 한 칸씩 채워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엄마는 딱 내 나이에 나를 낳았다. (그리고 어제는 나의 생일이었다.)
당시에는 그리 어린 나이가 아니었다지만 내 생각엔 그때의 엄마도 지금의 나만큼이나 어렸을 거다.
엄마의 취미를 그대로 물려받은 딸은 똑같은 나이에 엄마가 될 준비를 하고 있다.
참 신기한 운명이다. 파우치를 다 만들고 나면, 아기를 위한 선물을 하나 만들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