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과 가면 - 존재의 감각 시리즈

달 : 고요한 얼굴

by 나소


깜깜한 밤이 되면 달이 뜬다.

달은 고개를 들면 바로 볼 수 있지만,

물이 있는 곳에선 고개를 숙이고도 달을 볼 수 있다.


물이 가득한, 촉촉한 내 방에도 달이 뜬다.

달은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다만 가장 중요한 조건이 있다.

주위가 깜깜해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고요한 밤하늘에 홀로 고고히 떠 있다.

그래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감히 닿을 수 없을 만큼 멀게 느껴진다.


그러다 고개를 숙이고 물 위를 바라보면

감히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와 있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우리 옆에 언제나 와 있는 달이다.


그 밑을, 그 옆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쳐갔을까?

누가 가장 오래 보고 있었나


둥그래 떠있는 달은

많은 사람들의 소원을 묵묵히 들어준다.


달의 뒷면을 들춰볼까? 하다가

손만 뻗어 쓰다듬는다.


지친 기색도 없다.

상상을 들어준다.

토끼가 살기도 하고,

외계인이 살기도 하고,

비밀스러운 기지도 존재한다.


다 품고 있으면서 아무 말도 없다.

비밀을 품고 있으면서,

누구한테 그 많은 보따리를 풀어놓을까.


마음이 이리저리 날뛸 때

감싸주기만 한다.


둥그래 떠있는 달을 우리는 선망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망망대해에 떠있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답답해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쓰다듬는다.

열심히 손을 비빈다.

소원을 빈다.


그 비결이 달을 오랫동안 빛나게 했나.


유일한 존재이면서,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존재이면서,

항상 같은 시간에 찾을 수 있는 존재.


내가 찾아가지 않고 찾아오는 존재

내 주위가 가장 어두울 때 찾아오는 존재


고요한 어둠을 익숙하게 만들어주는 존재.


폭신한 쿠션과 빛의 커튼을 안고

옆에 슬쩍 누워 안식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