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이 Jun 15. 2023

영국의 한쪽면

딸은 런던에서 1시간 반 정도 서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코벤트리라는 도시에 있는 있다.

지난주만 해도 20도가 되지 않던 기온이 주말부터 갑자기 30도를 찍더니 며칠 동안 한 여름 온도를 유지하고 있단다. 그저께 밤까지도 추워서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을 폭 덮어쓰고 잤었는데 하루아침에 30도까지 올라가 버렸다. 너무 더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화가 왔다. ‘에어컨을 좀 틀어달라고 요청하면 어때 ‘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아~~ 참 영국이지 ‘ 현실을 바로 직시했다. 영국은 대륙에 비해 기온차가 크지 않아 전반적으로 냉난방 시설이 잘 되어있지 않다. 에어컨은 물론 선풍기도 없는 집이 대부분이란다. 5년 전 여름 런던에 갔을 때도 이상기온으로 난리가 났었다. 뮤지컬 시어터에 냉방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대형 선풍기를 몇 대 틀었었는데 근처 있는 관객들은 그나마 괜찮았겠지만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사우나 겸 뮤지컬 관람을 했었다. 얼굴이 시뻘게져서 호텔로 돌아가는 가는 길에 택시안의 시원한 에어컨을 기대했으나 역시 없었다.


당장 선풍기를 살만한데도 없고 급한 불이라도 꺼야했기에

“샤워를 좀 하면 어때? “라고 하니

“방금 했는데 금방 땀이 나고 더워. 아무것도 못하겠어”

“얼음이라도 갖고 와서 몸에 대고 있으면 좋지 않을까?”

“얼음이 어디 있어?”

“아~냉동실에 없나? 없겠구나, 며칠 전까지 추웠으니...”

여름에 에어컨 없이 지낸 경험이 없는 아이들에겐 참 견디기 힘든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에어컨, 선풍기가 당연히 없었고 중학교 때 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선풍기는 있었던 것 같고 심지어 대학생 때도 강의실에 에어컨은 없었던 것 같다. 더우면 더운 대로 나름 적응하며 지내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었는데 요즘애들은 초등학교부터 에어컨 빵빵하게 나오는 곳에서 지내왔으니 문명의 이기를 벗어난 곳에서의 생활이 힘들듯 하다.


알면 알수록 영국은 우리나라와 참 다른 면이 많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러 번 여행을 갔을 때 느꼈던 영국이란 나라와 딸이 유학을 가고난뒤 생활인이로서 영국의 느낌은 정말 다르다. 즉, 여행자와 생활인의 영국에서의 삶은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여행을 갔을 때 영국은 다른 유럽의 다른 도시들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지리적 여건상 로마제국의 문명과는 다른 독자적인 모습이 있고 도시 자체가 박물관인 것처럼 옛것과 현대적인 것들의 조화로움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비싼 물가의 런던에서 유명 박물관이 대부분 공짜여서 다른 유럽도시와는 또 다른 후함을 가지고 있고 가진 자의 여유로움이 느껴지기도 하며 왜 그렇게 세계적으로 대단한 예술가들이 많이 나오는지 이해가 됐다. 또 테이트모던 같이 버려진 공장을 리모델링을 하여 런던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바꿔버리는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인해 과거를 통한 현재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드는 영국 도시의 특색이 살아있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여행자로서 맛있는 걸 찾아다니니 당연히 음식들도 다 맛있었고 오후에 마시는 티 한잔에 영국 귀족인 된 마냥 여유를 부리기도 하고 번화하고 발전된 도시 곳곳에 존재하는 작은 마켓들에서 이곳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구나 하는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였다. 


하지만 생활인으로서 딸이 생각하는 영국은 뭐든 한국보다 나은 게 하나 없는 곳이다. 

도대체 이 나라 사람들은 이걸 음식이라고 먹는건지 영국에는 먹을것이 없다. 물가 또한 살인적이고 일처리는 지상 최고 느리고 불친절한 사람들의 굳은 얼굴과 딱딱한 말투, 스마트하지 못한 대응에다, 지저분하고 위험하기까지 한, 선진국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세상에서 가장 낙후된 나라로 인식되어져 있다. 한번 편견이 생기면 모든게 다 그렇게 바이어스되어서 보이듯 지금 영국은 딸에게 최악의 나라이다.


어딜가나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건 기본인데 한번은 샌드위치를 먹으러 갔다가 종이에 번호를 써서 나눠주길래 여기는 그나마 번호표를 나눠주니 다른 곳보다 좀 더 빨리 덜 기다리게 하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가게 앞에서 흩어져서 기다리고 있는데 샌드위치가 준비가 되자 일일이 몇번이냐고 번호를 물어보고 사람이 있는 곳까지 가져다 준다. 번호를 불러서 그 번호에 해당하는 사람이 받으러 가는게 더 빠르지 않나? 샌드위치를 들고 번호를 물어보고 가져다 주는 것이 친절하다고 해야할지 비효율적이라고 해야할지 헤갈린다. 딸과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어리둥절해 하며 왜 저럴까 생각하고 있는데 아무도 거기에 특별한 관심을 두고 있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딸의 영국에 대한 안좋은 고정관념에 쇄기를 박는 사건이 있었는데, 1년이나 걸려서 지은 신축 기숙사에서 계속 누수가 있더니 얼마 전에는 천장이 떨어지고 곳곳에 물이 쏟아져 기숙사 전원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었다. 냉난방 시설도 없는 4층 짜리 건물을 1년 가까이 짓더니 그것도 부실공사라고? 과연 한국이라면 가능한 일이 였을까? 인건비도 비싸고 물가도 비싸니 빨리 짓는 건 무리라고 해도 신축건물인데 천장이 떨어져 나가는건 좀 상식적이지 않은 것 같다. 혹시 아이들이 다치기라도 했으면 어쩔뻔 했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않는다. 


축구와 맥주, 위스키, 왕이 있는 나라. 

격식과 권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 

산업혁명을 통해 가장 먼저 산업화 되었지만 지금은 대영제국의 옛모습을 그리워하는 나라인 영국.  

아직 영국의 일면만 보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비싼 물가, 비싼 인건비로 뭐든 빨리 처리하기 힘든구조가 되어가고 있어 사회발전이 더디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자꾸 후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딸이 또 다른 면의 영국을 알려면 좀 더 시간이 걸릴 듯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I d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