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삶
책을 전해주고 주차장을 나서 도로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심장이 죄어 드는 듯한 고통과 슬픔을 느꼈다.
'뭐지 이 기분은?'
흡사 1달 전 아이가 영국으로 떠나던 날 느낀 슬픔과 너무 유사해서 그날이 번듯 떠오를 정도였다.
'이렇게 슬플 일인가?'
그냥 책이었다.
30년 전 대학시절에 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기사단장 죽이기'까지, 무라카미 류의 몇 권의 책과 합쳐서 30권 안 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정리한 것뿐이었다. 그것도 어디 내다 판 것도 아니고 소중히 다뤄 줄 지인에게 준 것이었는데 이렇게 가슴이 아픈 건 무슨 이유일까?
작년에 이사를 오고 딸아이 방을 없앴다. 유학을 갔으니 한국에 와도 잠깐 있을 거고 어차피 집도 좁아지고 해서 아이의 물건들을 모두 정리를 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아이가 몇 번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잠깐이지만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시 아이 방을 만들기로 하고 책장 하나는 아이 것, 다른 하나는 나의 것으로 각자 필요한 것만 남기기로 하니 책을 정리해야만 했다. 이사 오기 전에 이미 불필요한 책들은 모두 버리고 내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만 남겼었는데 여기서 또 정리를 해야 하니 너무 고민이 되었다. 며칠을 이것저것 솎아 내다가 결국 하루키 친구들을 보내기로 결정을 내렸다.
책을 주기로 한날 전달하지 못하고 2달 넘게 차 안에 있었다. 차 트렁크를 열 때마다 '아, 맞다. 책!' 빨리 연락해야지 하면서도 이상하게 계속 시간이 흘러가 버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턴 트렁크 한 곳에 우두커니 자리해 마치 차의 한 부속품처럼 없으면 차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이 생각이 되기도 했다. 매일 특별히 뭘 하지 않아도 그냥 거기 우두커니 있어서 언제든지 만질 수 있고 가질 수 있어, 아직은 소유하고 있다 것에 큰 위안이 되었었나 보다.
책장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30년 전부터 사기 시작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로운 책이 나올 때마다 하나씩 사서 읽고 모으다 보니 책장 한 곳에 차곡차곡 쌓여 갔고 그중 오래된 책들은 만지지도 않은지 몇 년이 되어 낡고 먼지가 쌓였지만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만족감과 행복을 줬었던 것 같다. 항상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아 신경 쓰지 않다가 막상 사라지면 그들의 부재를 뼈저리게 느끼는 부모님의 존재에 비유하면 너무 큰 비약인가? 큰 고목나무처럼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며 자식의 안녕과 행복을 바라며, 자식에게 말을 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그분들의 사랑. 매일 뭔가 커뮤니케이션을 하지 않아도 안정감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존재. 그랬었나 보다...
나와 청춘을 함께 하고
자아와 삶을 살아가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
나의 20대를 온전히 차지한
무라카미 하루키.
"상실, 허무주의, 담배, 맥주와 땅콩, 위스키, 재즈, 마라톤, 쥐와 양과 그리고 기사단장"
그런 그들을 떠나보내자, 이대로 계속 운전하기 힘들어 지인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 책들은 오빠가 맡아주는 거예요.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할게요. 무라카미 하루키랑 헤어지는 기분이네요. 한 때 나의 모든 것을 지배하던 사람, 안녕~~!!"
무라카미 하루키
안녕!
後日附記
갑자기 일본 여행 갔다가 산 하루키 책이 생각나 책장을 뒤지니 있다. 유리카!! 나중에 일본어 공부를 해서 꼭 원어로 읽어야지 하고 샀던 책이다. 이거 하나는 간직하련다. 언젠간 읽을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