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by 유이
옮긴 이 '이영의'의 작품해설 중 발췌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1962년 소련의 월간 문예지인 '신세계' 11월호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 소련의 문단은 이 무명작가의 작품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고, 곧바로 대대적인 문학적 정치적 논란이 벌어졌다. 이 작품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은 당시 오랫동안 침체되어 있던 소련 문단에 활기를 불어넣음과 동시에 독자들에게도 놀라운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 작품은 당시 스탈린 치하의 노동수용소 실태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문체, 그리고 극도의 가혹한 중노동 생활을 겪으면서도 목청 높은 정치적 구호나 비판보다는 담담하고 나직한 목소리로, 그러나 강도 있게 한 인간의 비극을 그려나가는 작가의 예술적 재능으로 하여 높은 관심을 받게 되었다.

또한 이 작품은 솔제니친이 1945년에 소련 당국에 의해 반소행위를 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이후 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보낸 고통과 어두운 세월을 묘사하여, 강제노동수용소의 실상과 정치권력의 허상에 대해 낱낱이 폭로했다는 점에서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 스탈린 이후 소련 문학의 전형으로 주목받게 되었다.


작가는 이 소설 속에서 소련의 법률 파괴 결과로 나타났던 스탈린의 잔학성과 전횡의 가공할 사실들에 대한 관심보다는,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의 수용소 생활의 평범한 나날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평범한 나날은 독자들에게 생동감 있고 친밀감 있는 인물들의 비극적 운명으로 인해 강한 비애와 아픔을 맛보게 한다. 그러나 이 예술가의 승리는 바로 그러한 비애와 아픔이 절망적인 비감이나 의기소침보다는, 오히려 그러한 사건들에 의해서 장식되거나 채색되지 않은 진실이 내포되어 있다는 점이고, 토로되었어야 마땅했던 것이 토로되지 않음으로써 더욱더 자유롭게 토로될 수 있다는 점에서, 또한 이와 더불어 그 속에 진실에 대한 드높은 감정을 더욱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나타난다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는 어떤 특별한 날의 묘사가 아니라 인간의 가장 비극적인 삶의 모습, 매일 똑같이 되풀이되는 하루의 묘사를 통해 절망적인 인간의 가장 비참한 삶을 보여준다. 수용소 대부분의 죄수들과 마찬가지로 슈호프 역시, 뚜렷한 죄목 없이 지배논리의 희생물이 되어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죄명으로 억압된 삶을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고된 노동과 그야말로 <개>로 전락하여 남의 죽그릇을 핥는 굶주림, 혹독한 추위에 내동댕이쳐지고, 권리라고는 가져본 적이 없는 꼭두각시처럼 취급당하며 담배꽁초 하나에도 절망적으로 전전긍긍하는 상황 속에 내 버려지고, 인간의 전 존재가 여지없이 하나의 노동기계로 전략되어 학대당하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가장 처함 한 수용소 안의 슈호프와 그의 동표 죄수들은, 끝도 없이 수많은 세월 동안 모든 사고조차 마비되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조차 잃어버리고, 그러한 상황에 익숙해져 살아가는 희망 없는 사람에 대한 처절한 비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솔제니친은 지배권력의 이데올로기로 인해 죄 없이 고통당하는 힘없는 약자에 대한 숭고한 애정과 작가의 소명을 가지고 불의와 정치권력에 항거하고 진실을 밝히고자 하며 그러한 예술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의 궁극적 목적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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