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동쪽

인간의 주인은 바로 인간이다

by 유이
2008년 여름 옮긴이 정회성


이 작품에는 스타인벡의 인본주의적 가치관이 잘 녹아 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신의 명령이나 주어진 운명대로 사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주인은 바로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본인의 의지대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 있고, 또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자신의 운명과 직접 부딪쳐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스타인벡은 말한다. 비록 그 과정이 느리고 고통스러울지라도 인간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데에 삶의 가능성과 희망이 있고, 인간의 위대성과 존엄성이 있다고.




시간은 사람의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기묘하면서도 모순된 것인지도 모른다. 예컨대 단조롭고 지루한 시간은 한없이 길게만 느껴진다. 그런데 사실 그런 것만도 아니다. 재미없고 단조로운 시간은 기억에 오래 남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흥미진진하거나, 슬퍼서 상처받거나, 기뻐서 즐거웠던 시간은 오래간다. 잘 생각해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하릴없이 지나가는 시간은 언제까지고 붙잡아 매어 둘 수 없다 사건이 없는 단조로움은 지속성을 이어갈 만한 버팀목이 없는 것이다.


봄이 되자 그는 동쪽을 향해 발길을 돌렸는데, 이번에는 전보다 한결 느린 걸음으로 움직였다. 여름에는 깊은 산속이 시원했고, 외로운 사람들이 그렇듯 산촌 사람들은 친절했다. 애덤은 덴버 근처에 사는 한 과부의 가게에서 일자리를 얻어 그녀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를 하고 같은 침대에서 자다가 서리가 내릴 무렵이 되자 다시 남쪽으로 떠났다. 그는 리오그란데를 따라가다가 앨버커키와 엘파소를 지나고 빅벤드와 러레이도를 거쳐 브라운스빌까지 갔다. 그러는 동안 음식과 기쁨에 관련된 스페인 말을 배웠고, 인간은 아주 가난할 때에도 남에게 뭔가를 주거나 돕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애덤은 그제야 인간이란 사람을 짐승처럼 대할 수 있고, 또 그런 인간과 어울리자면 그들과 똑같이 짐승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깨끗한 외모, 솔직한 표정, 남의 눈을 똑바로 보는 시선. 이런 것들은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었고, 또 그런 관심은 처벌을 불렀다. 애덤은 추악하고 잔인한 짓을 저지르는 사람은 자신을 다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보복으로 다른 사람에게까지 상처를 입힌다고 생각했다. 낮에 작업을 할 때는 총을 든 보초가 감시를 하고, 밤에 발목에 쇠사슬을 채우는 것은 단순히 범죄 예방 차원이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저항을 억제하고 죄수의 의지를 꺾기 위해 채찍직을 하는 것은 그만큼 간수가 죄수를 드려워한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애덤은 장기간의 군대 생활을 통해 두려움에 떠는 인간은 위험한 동물과 다를 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또한 누구든 마찬가지겠지만 채찍질이 그의 시체와 정신에 나쁜 영향을 미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애덤은 자기 주변에다 장막을 쳤다. 얼굴 표정을 없애고, 눈빛을 감추고, 말수를 줄였다. 얼마 후에는 채찍질을 당하는 일이 생겨도 크게 놀라지 않고 순순히 매를 맞았으며, 그러다 보니 아픔마저 심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고통은 매질이 진행 중일 때보다 끝난 이후가 더 심한 법이다. 등의 근육이 찢겨 허연살이 너덜거릴 때까지 매를 맞는 사람을 보고도 연민이나 분노는커녕 아무런 관심도 드러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제력의 승리이다. 애덤은 이런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제가 왜 하인 노릇을 하면서 만족해하는지 궁금하신 거죠?"

"그걸 어떻게 알았나?"

"눈치를 보면 알 수 있죠."

"내 질문이 불쾌한가?"

"당신이 묻는 건 괜찮아요. 괜히 심각한 체하면서 묻지 않는다면 상관없습니다. 사람들은 왜 하인을 창피스럽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하인은 철학자에게는 피난처가 되고, 게으름뱅이에겐 밥을 먹여 주고, 제대로만 하면 권력과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이죠. 똑똑한 사람들은 왜 하인을 직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하인 노릇도 잘만 하면 이득이 있는데 말입니다. 훌륭한 하인은 주인의 관용 때문이 아니라 습관과 여유 때문에 편안한 생활을 합니다. 입에 밴 양념이나 발에 맞는 양말을 바꾸기란 어려운 일인데 주인은 못난 하인이라도 옆에 두는 게 낫답니다. 저도 훌륭한 하인 축에 들어가지만 그런 하인은 주인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어요. 주인에게 이렇게 생각해라, 저렇게 행동해라, 누구와 결혼해라, 언제 이혼해라는 말까지 해 줍니다. 주인을 교묘하게 겁먹게 하고 행복하게 만들다가는 마침내 유언으로 재산을 분배하게까지 만들죠. 저도 마음만 먹었다면 주인의 재산을 훔치고 발가벗기고 두들겨 패 놓고도 고맙다는 치사를 듣고 떠날 수 있었을 겁니다. 저 같은 사람은 보호받을 수 없는 처지죠. 그런데도 주인은 나를 지켜주고 보호해 줄 수 있어요. 사람은 저마다 일을 하고 고민을 하며 삽니다. 그러나 저는 일도 덜 하고 고민도 덜 하죠. 저는 좋은 하인입니다. 그렇지 않은 하인들도 일이나 고민을 하지 않으면서 먹고 입고 보호를 받죠. 하인처럼 형편없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우수한 인력이 드문 직업도 없을 겁니다."


사람들의 영혼에 신앙이라는 달콤한 향기를 가져다주는 교회가 강한 흑맥주 시대의 양조장의 말처럼 당당하고 힘차게 들어오는 동안, 인간의 육체에 해방과 기쁨을 주는 여자 복음 전도사들이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가린 채 떳떳지 못한 사람들처럼 조용히 들어왔다.


"모르시겠어요? 미국 표준성서에는 인간에게 죄를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극복하라고 '명령'을 내려요. 여기서 죄는 무지로 볼 수 있죠. 그런데 흠정역 성서에는 '너는 죄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약속을 하는 것으로 번역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인간이 확실하게 죄를 극복할 것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나 '팀셀(timshel)'이라는 히브리어는 'Thou mayest(너는 할 수도 있을 것이다)'로, 선택의 기회를 주는 단어입니다. 어쩌면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지도 모릅니다. 선택의 길이 열려있다는 말이니까요. 요컨대 책임을 인간에게 돌리고 있는 겁니다. '너는 할 수도 있을 것이다(너는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는 곧 '너는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너는 다스리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는 의미이지요. 잘 모르시겠어요?"


"하지만 '너는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는 말은 다릅니다! 이 말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고, 인간을 신들과 동등한 자리에 올려놓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약한 행동이나 추잡한 행위 혹은 형제를 살상하는 잔인한 일에 있어서 중대한 선택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죠. 인간은 자신의 길을 선택해 어떤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그 길을 걸어가 목표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리의 목소리는 승리의 나팔소리처럼 우렁찼다.

애덤이 말했다.

"리, 자네는 그것을 믿나?"

"그럼요, 믿고 말고요. 게으름 때문에, 혹은 나약해서 신의 무릎 위에 주저앉아 '어쩔 수 없었어요. 길이 정해져 있는걸요.'라고 말하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선택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들죠. 고양이에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꿀벌은 꿀을 만들어야 하죠. 거기에는 신성함이란 없습니다. 천천히 죽을 때를 기다리던 노 선비들이 이제는 흥미로운 일이 너무 많아 죽지 못하겠다고 하시더라니까요."


"'너는 죄를 다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리, 바로 그거야. 나는 모든 인간이 파멸한다고는 생각지 않아. 파멸하지 않았던 사람들을 예로 들라면 여럿 들 수 있네. 그들이야말로 세상 사람들에게 삶의 지표를 제시해 주는 분들이야. 그것은 전쟁에서도 그렇지만 정신에도 적용돼. 오직 승리자들만이 기억되지. 확실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파멸하지만, 불기둥처럼 어둠을 뚫고 겁에 질린 인간을 인도하는 사람도 있어. '너는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너는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얼마나 큰 영광인가! 우리가 나약하고 병들고 호전적인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우리 모두가 그랬다면 우리는 몇 천 년 전에 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거야. 화석이 된 턱뼈와 석회암 속에 남아 있는 부러진 이빨이 인간이 지상에 존재했다는 유일한 증표가 되었겠지. 그러나 리, 승리의 길로 살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니! 전에는 그것을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했네. 이제 내가 왜 오늘 밤 애덤에게 그 사실을 말했는지 알겠나? 나는 선택권을 행사한 거야. 어쩌면 내가 잘못한 것인지도 몰라. 하지만 애덤에게 말을 해 줌으로써 그로 하여금 살든지 아니면 죽는 길을 택하든지 강요한 걸세. 그 단어가 무엇이었지, 리?"

"팀셀이었죠. 마차 좀 세워 주시겠어요?"

리가 말했다.


세상에는 한 가지 이야기밖에 없다. 모든 소설과 시는 우리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선악의 끊임없는 대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악은 끊임없이 또 다른 악을 낳지만, 선, 다시 말해 미덕은 불멸하는 것이다. 악은 항상 새롭고 싱싱한 젊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미덕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숭고하고 존엄한 얼굴을 하고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영역본이었다.

리는 행주로 철테 안경을 닦고는 책장을 대충 넘기기 시작했다. 의식적으로 마음의 안정을 주는 글귀를 찾으려 애쓰는 자신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는 천천히 한 단어 한 단어 소리 내어 읽었다.

"모든 것은 오직 하루뿐이다. 기억하는 것도 기억되는 것도 모두 마찬가지다. 모든 것은 변화에 의해 발생한다는 걸 항상 기억하라. 이 세상은 본래부터 현존하는 걸 변화시켜서 새것으로 만들기를 무엇보다 좋아한다는 사실을 언제나 명심하라. 현존하는 만물은 어떤 의미에서 미래에 존재할 씨앗이기 때문이니라."

리는 다음 페이지를 훑어보았다.

"그대는 곧 죽게 되리라. 그러나 그대는 여전히 단순하지 못하고, 마음의 혼란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며, 외부에 의해 상처받고 있다는 의혹에서 벗어나지도 못하고, 모든 이에게 관대하지도 못하며, 지혜를 발휘하여 공정하게 행동하지도 못하는도다."

리는 책에서 눈길을 들었다. 그러고는 마치 옛 선현들에게 답이라도 하듯이 중얼거렸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렇지만 실천하기가 대단히 힘들군요. 죄송합니다. 그러나 분명 이런 말씀도 하셨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언제나 지름길을 택하라. 지름길이야말로 자연스러운 길이다.' 이 말씀을 절대로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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