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살, 임용고시에 도전하다

by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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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에서 5년째 일하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늘 불안함이 있었다.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는 현실을 목격하며, 공립으로 가는 길만이 아이들과 평생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37살, 늦은 나이였지만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현실과 마주한 순간


사립유치원에서 5년간 일하며 나는 정말 행복했다.

아이들은 나를 진심으로 따라주었고, 학부모들도 신뢰해 주었다. 동료 선생님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그런데 40세가 가까워지면서 불안함이 엄습했다. 주변에서 나이 많은 선생님들이 하나둘 그만두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그때 공립유치원 선생님인 대학 동기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공립은 나이가 전혀 문제가 안돼. 오히려 경험이 많을수록 더 좋아."



2년의 긴 터널


2020년 3월, 임용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새벽 5시 기상, 오전엔 유치원 수업, 오후엔 인강, 밤엔 복습. 하루 5시간 수면으로 버텨내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학원에서 가장 힘든 건 나이 차이가 아니라 체력 차이였다. 20대 친구들은 밤 12시 넘어서까지 공부하고도 다음 날 멀쩡한데, 나는 11시만 넘어도 눈이 감겼다.


"언니는 일도 하시면서 공부하시니까 정말 대단해요."


한 친구가 진심 어린 말을 했지만, 그 순간 나는 변명하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나이와 상황을 핑계로 삼고 싶지 않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더 간절했으니까.


더 견디기 힘든 건 가족들의 걱정 섞인 잔소리였다.

"벌써 좋은 직장 있잖아. 굳이 그럴 필요가?"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10년 후, 20년 후의 나를 생각하면...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


첫 해 결과 발표날. 컴퓨터 화면에 내 번호는 없었다. 커트라인에서 3점 부족. 아쉬운 점수였지만 떨어진 건 떨어진 거였다.


"1년 더 할 수 있어?"

거울 속 지친 내 모습에게 물었다.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뒤, 퇴근길에 우연히 만난 전 제자가 나를 알아보며 달려왔다.

"선생님! 선생님 맞죠?"

벌써 초등학교 2학년이 된 그 아이의 환한 웃음을 보는 순간, 마음이 정해졌다.


이런 만남들이 더 오래 계속되길 바란다면, 포기할 수 없었다.



두 번째 도전, 그리고... 합격!


2021년은 완전히 다른 전략으로 접근했다. 첫 해의 실패가 오히려 명확한 로드맵이 되어주었다.

무작정 외우기보다는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기출문제 패턴을 분석해서 출제 포인트를 찾았다.


무엇보다 현장 경험을 최대한 활용했다. 이론 문제가 나오면 실제 교실 상황을 떠올리며 답을 찾았다. 20대 수험생들에게는 없는 나만의 무기였다.


"이번엔 정말 다를 거야."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체력적으로는 한계였지만 마음은 더 간절했다.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모든 걸 쏟아부었다.


실기 준비도 달랐다. 1년 전 경험이 있으니 시행착오가 줄어들었다. 현장 경험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론으로만 배운 20대 수험생들과 달리, 나는 실제 교실에서 아이들과 부딪히며 터득한 노하우가 있었다.


2022년 1월, 합격 발표일. 컴퓨터 앞에 앉아 떨리는 마음으로 내 수험번호를 찾았다.


"합격이다!"


그 순간의 감정을 뭐라 표현할까?

기쁨, 안도감, 성취감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2년간의 고생이 보상받는 순간이었다.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었을 때 엄마가 우셨다.

"정말 고생 많았다. 이제 마음 편히 일할 수 있겠구나."



지금, 공립유치원에서


현재 병설유치원에서 일한 지 2년째다.

매일 출근하면서 느끼는 건, 이곳이 정말 내가 찾던 곳이라는 것이다.

사립에서 늘 마음 한편에 있던 불안함은 완전히 사라졌다. 여기서는 나이가 경력이 되고, 경험이 자산이 된다.


무엇보다 소중한 건, 20년 후에도 이 자리에서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확신이다. 그 안정감이 나를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교사로 만들어준다.


물론 공립에도 어려움은 있다. 더 체계적인 행정업무, 각종 연수와 평가들. 하지만 이 모든 건 감수할 만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과 보람에 비하면 말이다.



늦은 도전을 망설이는 당신에게


가끔 후배들이 묻는다. "언니처럼 나이 들어서도 임용고시 도전할 수 있을까요?"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한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야. 중요한 건 얼마나 간절한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지야."


37살에 시작해서 39살에 합격한 내 경험이 그 증거다. 늦었다고 생각할 필요 없다. 오히려 인생 경험과 간절함이라는 무기가 있지 않은가.


지금도 가끔 그때를 떠올린다. 만약 포기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평생 후회했을 것이다. '그때 좀 더 해볼걸'하면서 말이다.


임용고시는 단순히 직업을 얻는 시험이 아니었다. 내 한계를 뛰어넘고, 꿈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은 자신감과 성취감은 어떤 보상보다 소중하다.


2년의 길고 힘든 터널을 지나 지금의 자리에 있다. 매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이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낀다. 포기하지 않길 정말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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