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아침일찍 다급하게 일층으로 내려온다.
"엄마, 이층에 빼빼로 하나 있었는데, 그거 못봤어?"
" 어...그거...엄마가 어제 먹었어."
"모야? 그거 오늘 가져가려고 아껴놓은건데..."
"그랬어? 말을 하지..."
"아니, 엄마는 물어보고 먹지...나 그거 일부러 안먹고 남겨둔건데...."
"야!!! 대가족에서는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라고 엄마가 얘기 했지?"
아끼면 똥된다고 빨리 먹으라고 그랬잖아.
이름을 써놓던가...대가족에서는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야!!!"
방귀 뀐 놈이 성을 내고 있다.
신혼 초 아버님 생신이었다.
음식을 잘 못하는 나는 근처 맛집에 가서 어른들이 좋아하신다는 해신탕을 포장해 왔다.
어른들은 그렇게 푹 끓인 진한 국물을 좋아하신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반찬 몇가지 하고 포장해온 음식을 큰 냄비에 끓여 식사 준비를 했다.
전복도 들어있고 인삼등 건지가 잔뜩 들어 있어 정말 건강해 보이긴 했다.
그런데 웬걸...닭이 너무 작았다.
어른이 넷인 식사자리에 정말 닭이 작아도 너무 작았다.
이거 대자 맞는거야?
"에게...닭이 너무 작다.
이거 어디서 사왔니?"
"저기...저기 비산동에서 맛있다고 사왔는데...정말 너무 닭이 작네요...어머니...하하하"
며칠 후 어머니는 어마어마한 토종닭으로 닭백숙을 끓여놓고 우리를 부르셨다.
아버님 생신에 우리가 먹었던 것이 닭이었나 오리었나..
존재감을 재확인 하시고자 어머니께서 준비하셨나보다.
파는 것보다 훨씬 맛있고 양도 푸짐했다.
음식을 본격적으로 하시 시작한 나는 손도 예전보다 커지고 속도도 빨라졌다.
또 다가온 아버님 생신
7명의 대가족이 외식을 하려니 돈이 너무 많이 든다.
조금만 부지런 떨어 보자.
이번에는 크게 한상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매운탕을 하기 위해 백화점 생선코너를 찾았는데 정말 어머무시하게 크고 때깔 좋은 갈치가 누워 있었다.
아버님이 제주 무를 받아 위탁판매를 했을때 손질해서 진공포장된 갈치를 여러번 받아 먹은 적이 있었다.
그것 보다 조금 더 큰 사이즈였다.
머뭇거리는 나를 보시던 주인장은 8만원에 준다며 호객행위를 하신다.
너무 싱싱한 은빛 갈치는 나를 보며 사가라는 애절한 눈빛을 보낸다.
이럴 때 먹어보는거지
흔들리던 눈빛은 확신에 찼다.
고향이 당진인 시부모님은 생선킬러다.
생선반찬을 드시면 단단한 뼈를 제외하고는 남는것이 없다.
대가리도 입에 들어가면 아주 작은 뼛조각 같은 것만 나올정도로 발라드시는 달인들이다.
강원도가 고향인 부모님과 살았던 나는 생선이라고는 고등어랑 이면수외에는 먹어본 적이 없다.
비린내 나는 생선이 그렇게 맛있으실까...
가끔씩 시장에서 싸고 얇은 갈치를 사다 조려 드시는 시부모님이 생각나
매운탕에서 갈치조림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케이크는 6만원 갈치는 8만원
여기에 돈을 더 보태 나가서 먹는게 낫지 않겠니? 라는 남편의 조언을 무시하고
무를 납작 납작하게 썰어서 남대문 갈치골목의 갈치조림과 비슷한 맛을 냈다.
예상한 대로 부모님은 정말 맛있게 드셔주셨다.
비싼 갈치라는 것을 속이고 조용히 가는 것이 폼새가 좋을까.
당신들을 위해 비싼 갈치를 사서 내가 맛있게 요리를 했다 가 더 뽀다구가 날까
소리없이 나대는 나의 심장소리.
"너무 맛있네, 갈치가 어떻게 이렇게 통통하고 좋다니...갈치는 얼마 주고 사왔냐?"
" 싸게 잘 샀어요. 맛있게 잘 되어서 좋네."
하려는 찰나
오늘은 나보다 남편이 빠르다.
"백화점에서 9만원 주고 사왔대요. 아부지 생신이라고 아주 제대로 준비했네."
"뭐라구? 9만원???"
어머니는 원래 큰 눈이 더 커졌다.
너가 미쳤구나...라는 표정
생신이잖아요..그냥 조용히 드세요...라는 나의 표정
우리는 알 수 없는 눈빛과 수신호로 생신상에서 찰나의 다툼을 벌인다.
9만원짜리 갈치조림은 누가 했는지 정말 맛있었다. 푸짐하게 두끼는 잘먹었다.
아이들이 어릴땐 짜장면을 그렇게 좋아했다.
대가족은 짜장면도 자주 시켜 먹을 수 없다.아니 못먹는다.
양이 적은 아이들을 고려해 정말 딱 맞게 시켰다.
배달통에서 꺼낸 탕수육은 생각보다 작았다.
그냥 저냥 나눠 먹지...하면서 음식을 상에 차렸다.
"어머니 왜 안드세요? 짜장면 불어요..."
"아니 낮에 먹은게 소화가 안돼서 별로 배가 안고프네..."
식탐대마왕 시아버지는 양이 적건 많건 당신 드시고 싶은 만큼 다 드신다.
아이들이 하나 둘 달려드니 탕수육이 팍팍 줄어든다.
남편은 짜장면이 적은지 슬그머니 일어나 밥을 가져온다.
어머니도 이내 소화가 안되니 나도 밥을 먹어야겠다 하시며 아이들이 남긴 짜장소스에 밥을 비벼 드신다.
양이 많이 적어보였는데 아이들은 부족함 없이 잘 먹었다.
어머니가 소화가 안된다고 거의 안드셨으니 양이 맞은 것이다.
그때는 몰랐다.
어머니께서 양이 적으면 안드신다는 사실을
아이들 다 먹고 뒤늦게 남은 것들을 드신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소화가 안된다, 밥맛이 없다, 점심에 너무 잘 얻어 먹고 왔다 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한참 지나고 알았다.
"어머니는 음식이 적으면 안드시더라. 난 그걸 최근에 알았어."
"아니야, 엄마는 소화를 잘 못시켜서 밀가루를 안좋아해!"
" 무슨 소리야? 오늘 울면 혼자서 다 드시던데?"
"고뢔? ㅋㅋㅋ"
아들 키워놔야 소용없다더니
엄마가 밀가루를 좋아하는데도 안먹은건지
정말 소화가 안되는 건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음식을 시키거나 외식을 하면 남더라도 푸짐하게 시켰다.
족발도 맛있는 집에서 많이 포장해 왔다.
남아서 아버님이 낚시에 싸가실 망정 많이 사왔고
짜장면도 인당 하나씩 먹었다. 남으면 어머니가 내일 드실거니까 ㅋㅋ
애매하게 먹을 거면 그냥 집에서 집밥을 먹었다.
역시나....어머니는 울면도 한 그릇 혼자 다 드시고 짜장면도 한그릇 다 드신다.
족발 물린다 하실 때까지 드신다.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야이 야아야~~~~
딱 이 노래다.
딸기도 아이들 먹으라고 손도 안대신다. 그러다 상해서 버린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샤인머스캣도 비싸니 안드시더라.
할일이 많아 반찬가게에서 사온 반찬도 안 드신다.
다 같이 먹자고 사온 건데 아끼다 아끼다....버린다.
며느리가 먹고 싶어 사온건데...홀랑 먹어치워 버린다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타박한다.
아이들 먹일 바나나 먹지 말라고 아버님과 다투기까지 하신다.
며느리는 딸내미 빼빼로도 다 먹어버리는데
시어머니는 속이 너~~무 태평양같은게 흠이다.
며느리를 위하는 건지 며느리 속을 긁으시는건지 모르겠다.
대가족의 삶에선 선점하는자가 살아남는다는 것을 아직도 모르시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제는 저도 벌잖아요...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푸짐하게 먹고 살자구요.
아끼다 똥 돼요.
어머니 아버님께 맛난 비싼 밥 사드릴 능력, 이제는 된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