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이 살아 온 시어머니는 비싼 선물보다 돈이 좋다.
" 어머니, 집에서 막 쓸 스카프 없나요? 날씨가 너무 춥네..."
" 왜 없어? 여기 잔뜩 있잖아."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어머니께 sos를 청했다.
나는 막 쓸 스카프가 한개도 없지만 우리 어머니는 버리기 직전 스카프도 모아두시는 양반이니
분명 뭐라도 있을 것 같았는데 역시나..장롱에 스카프 천지다.
선물로 사드린 스카프며 가방이며 잔뜩이다.
신혼 초에는 대신 정리도 많이 해드렸는데
아무리 정리해 드려도 다시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관성의 법칙이 적용된다.
" 여기 이런 것들 왜 안하세요? 스카프 천지네."
" 나는 이상하게 치렁치렁 안하게 되더라. 쓰는것만 쓰게 돼지."
" 골고루 다 예쁘게 잘하고 다니시지, 아끼다 똥 된다.
이것도, 저것도 다 내가 사 드린 거잖아."
결혼하고 몇년 안되었을 때다.
이불을 사러 백화점을 들렀다.
충분히 포근하면서 재질도 좀 좋은 이불을 사고 싶었다.
간절기 이불이라 여기 저기 둘러봐도 생각보다 많이 비싸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시부모님께도 화사하게 한 채 해드리고 싶었다.
사면서 오조오억번 생각이 활개를 친다.
어머니는 다 떨어져 너덜너덜 해질때까지 뭐든 쓰시는 분이니
내가 이렇게 새 이불을 사가면 반가워 하시지 않을 것도 같고
나랑 같은 여자니까 새이불을 반기실 것도 같고
한참을 고민 끝에 그냥 사기로 했다.
맘에 안 드신다 하면 반품하면 되니까.
" 어머니, 저희 이불 사는데 너무 싸고 이뻐서 하나 더 샀어요."
" 아니...너는 돈이 썩어 나냐? 집에 이불이 천지인데.... 다시 갖다 줘라!"
역시나 단호하다. 예상했던 대로 안쓰신단다.
재질이 별로네, 정도도 아니고 그냥 안 쓰신단다.
아들 혼자 힘들게 벌고 있을 때니 어머니 입장도 이해 하지만
자세히 보지도 않고 무조건 안쓴다고 하시니 나는 너무 서운했다.
가격도 괜찮고 이불도 가볍고 참 좋았는데...
매몰차고 싸늘한 어머니의 말투
저렇게 까지 화를 내실 게 뭐람...
시어머니를 친하다고 생각한 내가 바보같아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마음 속 깊은 곳에 상처로 남아 평생 낫게 하지 않을 거라 다짐했다.
시간이 지나 아물더라도 다시 생채기를 내서 마음을 다잡아야지.
' 다시 어머니께 선물을 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평생 아물것 같지 않은 상처는 언제 그랬냐는듯 새살이 나와 흉터도 보이지 않는다.
까일 게 분명하지만 또 선물을 사드리곤 했다.
크리스마스 날 가족들의 선물을 하나씩 사면서 시부모님께도 따뜻한 목도리를
선물로 사드렸다.
아버님은 너무나 고마워 하시면서 받으셨지만
(여전히 잘 쓰신다)
어머니는 영 표정이 별로다.
그냥 저냥 넘어가는 가 싶었는데
다음날 부엌에서 밥을 하는 나에게 조용히 다가오신다.
" 저거 목도리...나는 있는거 하면 되니까 다시 갖다 주면 안되냐?
집에 있는 것도 잘 안쓰는데 말이야...아버지는 좋아하는데 나는 목에 뭐 하는게 영 불편해서 말이야."
예전보다 훨씬 순화된 어머니의 말투다.
서운할 것도 없다. 사실 어느정도 예상한 결과였다.
한번도 기분 좋게 선물을 받으신 적은 없었으니까 나도 그려려니 한다.
'나는 돈이 더 좋은데...돈으로 주면 안되겠니? '
어머니의 마음의 소리를 알아채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어머니께 선물을 여러 번 하면서
어른들은 역시 돈을 제일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취향도, 성격도 다르고 세대까지 다른데 어머니가 좋아할 것이라고 예상한 나의 선물들은
선물을 하는 나만 기분이 좋을 뿐 어머니의 입장은 반영되지 않았다.
없이 살아 아끼고 아끼며 살아 온 어머니는
아들 내외가 뜯어 말리는 의료기기에 가서 아줌마들과 맛난 간식 사서 나눠먹고
비싸지만 한 푼 두 푼 모아 당신이 써보고 싶은 의료기기 사는게 더 좋았을 것이다.
따뜻한 이불보다 따뜻한 목도리보다 그게 더 좋으셨던 것이다.
그딴 거 다 사기라고
쓸데 없는 곳에 돈쓰지 말라고 하는 며느리도
어머니 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준 건 매 한가지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조금씩 낫기를 반복하면서 살았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또 상처를 주기도 했지만
어떤 때는 상처가 심해질까 소독약을 넌지시 건네기도 했다.
함께 살아 보니 진심을 알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함께 살았기 때문에 그 진심을 알게 되었다.
진심 따위는 알고 싶지 않았는데....
"어머니 이거 국장님이 쓰라고 주신건데 어머니 쓰세요."
" 아이고 화장품이네...네가 쓰지 왜 나를 줘 ? "
" 저는 쓰는 것만 써서 안 써요 ...어머니 쓰세요 "
아끼다 똥 된다구 ... 좀 팍팍 써요!!!
화장대에 뭐가 이렇게 많아? "
" 네가 준 건 다 좋은 거라서 아껴서 쓰는 거지..."
내가 어머니께 드리는 화장품은 전부 누가 준 것이고 내가 산 것은 하나도 없다.
하얀 거짓말은 점점 늘어 투명한 거짓말이 되어 간다.
내가 드린 화장품을 쓰시기는 하는 걸까 ...화장대에 전시만 되어있다.
누가 줬다고 해야만 기분 좋게 쓰는 당신
속이 뻔히 다 보이는
속고 속이는 두뇌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