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했나
2018년 8월,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이 터지고 난 뒤 교육부는 ‘학교생활기록부 신뢰도 제고방안’을 내놓았다. 과열된 입시 경쟁이 우리 교육의 문제라 판단하여 과도한 경쟁 및 사교육 유발 요소와 항목을 정비하고 학교 내 정규교육과정 교육활동 중심으로 학생부를 기록한다는 것이 이 방안의 골자이다. 그래서 이때부터 대입제공 수상경력 개수가 학기당 1개로 제한되고, 자율동아리 기재 개수도 학년당 1개로 제한되었으며, 소논문도 생기부에서 기재하지 않게 되었다. 또 봉사활동 특기사항 및 방과후학교 활동도 기재하지 않도록 바뀌었고, 학교스포츠클럽과 독서활동, 청소년단체활동은 각각 클럽명과 도서명, 단체명만 기록하도록 바뀌었다.
사실 이때는 교사 입장에서 생기부 기재 축소가 은근 좋았다. 단순히 기재 할 내용이 줄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전까지 공교육 내실화를 강조하며 아주 다양한 교육 활동들이(소논문쓰기대회, 각종 교과 캠프, 자율동아리 등등) 학교 교육 안에서 시행되었고 수시 전형도 확대되었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것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고 불필요한 경쟁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의 진로를 확실히 정하지 못한 학생들이 온갖 대회에 다 참가하여 어떻게든 생기부에 수상을 하나라도 더 채우기 위해 애쓰는가 하면,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책장만 넘겼는지 알 수 없지만 내용을 줄여야 할 정도로 독서활동을 꽉꽉 채워 제출했다. 상호 협력과 교류가 거의 없는 교과 중심의 자율동아리 활동을 하는 학생도 많았다. 학교에서도 너무 많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다 보니 내실보다는 오히려 학생의 입시 스펙을 챙기기 위함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생기부에 거품이 심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어쩌면 ‘학교생활기록부 신뢰도 제고 방안’으로 이런 과열이 조금 완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슬쩍 들었다.
그리고 2019년에는 조국 사태가 터졌다. 교육부는 그해 말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을 내놓았다. 2021년 고등학교 입학생부터 적용되는 이 방안은 영재발명교육 실적과 자율동아리는 대입에 반영하지 않기로 하였고, 청소년단체활동은 기재하지 않기로 했다. 봉사활동도 개인활동은 대입에 반영하지 않고, 학교교육계획에 따라 교사가 지도한 실적만 대입에 반영하며, 수상경력과 독서활동은 대입에 반영하지 않기로 하였다. 교사추천서도 없어졌으며 2024년 대입부터는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도 없어진다.
2022년 현재 고1, 2 학생들이 이에 해당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공교육 내실화를 이유로 학교 교육이 확대되고 거품이 일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학교 교육에서 다양한 활동들은 점점 다 빠지고 성적만 앙상하게 남고 있다. 물론 생기부에 기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교육활동이 시행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입시에 크게 영향을 받는 고등학교에서는, 특히 학생들이 이를 무시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앞으로는 생활기록부 반영 비중이 높은 수시를 축소하고 수능 중심의 정시를 확대한다고 한다. 학교가 학생들을 공부만 하는 기계로 만들지는 않을지 두렵다.
사회 이슈가 하나씩 터질 때마다 교육계가 흔들린다. 교육의 중요성과 힘을 알기에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혹은 앞서서 교육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요즘 느끼는 교육의 변화는 공정성을 빌미삼아 교육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재능을 남을 위해 기부하며 사회 구성원 및 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키우고, 자신의 진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교육과정에 들어온 봉사활동도 축소되고, 협력과 리더십을 키우기 위한 청소년단체활동도 사라지고 있다. 비슷한 흥미와 소질을 지닌 또래끼리 자율적으로 잠재력과 창의성을 개발하는 자율 동아리 활동도 축소되고 있다. (독서활동은 생기부에서 사라졌지만 차마 버릴 수 없어서 각 교과에서 특기사항에 쑤셔 넣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이제는 전인교육, 인성교육이라는 말을 듣기 힘들다. 이렇게 학업만 남은 교육이 진정한 교육이 맞을까? 그리고 생기부에 앙상하게 남은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진정으로 공정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