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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Mayfeng Sep 05. 2018

아무 일도 없는 날

어느 (봄)날의 일기 001 

@ Penang Island, Malaysia




계절이 바뀌고 빛의 행방을 관찰하는 일이 잦아졌다. 방마다 창마다 빛이 머무는 시간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 그로 인해 계속해서 그림자가 달라진다는 것. 새 집에서 누리고 있는 가장 큰 즐거움 중에 하나다. 아침 해가 뜨는 시간, 커다란 창 앞에 서서 맞은 편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 넘칠 만큼의 초록까지는 아니지만 적당한 초록과 적당한 여백과 적당한 하늘이 어우러져 어느 정도의 절제미가 느껴지는 풍경이 나의 부엌에서 오로지 나만 매일 누릴 수 있는 풍경이라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엷은 아몬드 색 벽과 그 벽에 눕는 짙은 햇살, 붙박이처럼 벽에 붙어 흔들리는 나뭇잎. 거기에 나의 테라스 정원의 색들이 더해진다. 빨간색 꽃이 피어있는 임파첸스와 몇 가지 허브들, 창문에 대롱대롱 걸어둔 러브체인, 그리고 창틀에 올려둔 하트 알로카시아까지. 빨강과 초록의 어우러짐은 황홀하다. 점심 무렵이 지날 때 쯤이면 빛은 방향을 바꿔 나의 테라스 정원에 드리우는데, 이 때 또 풍경이 달라진다. 나는 침실의 하얀 테이블에 앉아서 왼쪽과 오른쪽의 창을 번갈아 본다. 침실 창 밖에는 그렇다할 풍경은 없지만, 그래서 창 틀에 올려둔 오렌지 자스민 화분을 더 사랑스럽게 돌볼 수 있다. 아무 일도 없는 날, 좋아하는 음악을 켜놓고, 이렇게 빛들이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 살피는 것이 아무 일도 없는 날의 일과이며 또 기쁨이다. 



2018년 어느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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