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causa vita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ulie Mayfeng Oct 11. 2018

때때로 계획은 아무 소용이 없다

어느 (봄)날의 일기 003


@ California, USA




오늘은 눈을 떴을 때 Hotel California가 흘렀다. 기타 연주곡이었는데, 찾아보니 연주자는 코어 노르게(Kaare Norge)라는 덴마크 클래식 기타리스트였다. 중학교 때 텍사스에 살던 Dana라는 여자아이와 오랫동안 펜팔편지를 주고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아이는 내게 카셋트 테잎을 선물로 주었는데, 그 속에 Eagles의 Hotel California가 담겨 있었다. 시작 부분의 전자 기타연주는 그 때나 지금이나 환상적이다. 어쨌든 오늘 듣게 된 버전은 요즘 날씨처럼 포근한 느낌이었고, 한밤 중에 깨어난 내게 기분 좋은 기상시간을 선사했다.


또 다시 캘리포니아가 그리워졌다. 문득 문득 그 시간들이 떠오른다. 혼자서도 가보았고, 둘이서도 가보았고, 셋이서도 가보았지만, 기억에 가장 오래 남아있는 건 철저히 혼자였던 시간들이다. 


나름의 추억이 있는 헐리우드 호스텔에 방 하나를 잡고, 별 계획없이 나가 어디로든 돌아다녔다. 반스앤노블, 폴게티미술관, 선셋스트립의 하우스 오브 블루스, 멜로즈의 옷가게들, 패서디나의 앤티크샵들. 그러다 훌쩍 그레이하운드를 타면 샌디에이고나 샌프란시스코로 떠날 수 있었다. 다시 돌아왔을 땐 어디든 원하는 곳에 짐을 내리면 되었다. 산타모니카 해변 호스텔은 하룻밤에 33달러나 되었는데, 기억나는 건 하와이에서 온 여행자 할머니. 그녀는 내가 베니스비치에서 구입한 볼드한 목걸이를 보고 연신 예쁘다고 말했다. 


뭐 그런 특별하지 않은 일상들. 길게 뻗은 야자수와 작고 오래된 카페의 칠면조 샌드위치 사이의 초록색과 주황색, 커다란 철제 보온통에 담긴 헐리우드 호스텔의 까만 아메리카노와 꺼끌거리던 브라운 토스트, 호스텔 창밖으로 보이던 푸른 새벽녘의 코닥극장과 만차이니스 센터, 그리고 산타모니카의 선셋의 슬픈 그라데이션. 뭐 그런 것들. 그 사이에 놓여있던 시간들. 좋았다기보다 자유로웠는데, 자유로웠으니 좋았던 거였다.


소살리토 선착장에 있던 작은 집에서 아침을 먹었던 것 같은데 무얼 먹었는지 전혀 기억나진 않는다. 그냥 그 집이 지금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그러면 나는 다시 그 집에서 아침을 먹고, 그 후엔 그 옆에 어디 쪼그리고 앉아 볕이나 쐬고. 딱 여기까지. 때때로 계획은 아무 소용이 없다. 3 Apr. 2014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 일도 없는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