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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Mayfeng Aug 29. 2018

가네쉬 사두

쥴리 메이펑의 사진이 된 순간들 #029

INDIA. Varanasi. Ganesh sadhu. ⓒ Julie Mayfeng





인도 바라나시. 2011.




그날은 바라나시로의 두 번째 여행이었는데, 숙소에 도착했을 때가 아마 새벽 3~4시 쯤이었던 것 같다. 당장 체크인은 할 수 없었지만, 이틀 전 델리에서 겪었던 기차 캔슬 사건 때문에 바라나시에 도착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예약한 숙소는 갠지스가 한 눈에 들어오는 근사한 위치에 있었다. 게다가 가트(ghat, 강으로 이어지는 계단)도 바로 연결되어 있었다. 두 명의 직원은 새벽에 도착하는 여행자들을 맞기 위해 자다가 깨다가 했다.



노란색 고양이 한 마리가 밤의 테라스를 함께 어슬렁거렸다. 테라스의 난간을 잡고 서서 갠지스를 바라보았다. 미드나잇 블루의 하늘색과 가로등의 노란 불빛은 고흐의 그림 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순간 하늘에서 본 갠지스가 떠올랐다. 델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도착 한 시간을 남겨두고 창문을 여니 저 멀리 희뿌연 것이 보였다. 여자의 드레스자락 같은. 나는 마치 갠지스의 비밀을 알아낸 듯한 기분에 일기장을 꺼내 메모했다. 밤의 갠지스를 하늘에서 본 사람이 또 있을까 궁금했다. 내가 본 것은 아마도 갠지스 위로 피어오른 물안개였던 것 같다.



나는 가트로 내려갔다. 갠지스는 고요했다. 보트 한두 척만이 물 위를 떠가고 있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이미 목욕을 마치고 나와 머리를 말리기도 했다. 두 시간 넘게 고양이처럼 가트변을 어슬렁거렸다. 2년 전의 그 식당에서 아침을 먹었다. 메뉴도, 그릇들도, 식당의 푸른 벽도 그대로였다.



가트로 돌아와 보트에 올랐다. 끼~익 끼~익 노 젓는 소리가 반가웠다.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은 풍경들, 마니카르니카 가트에선 여전히 시신을 태우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구강용 민트 하나를 꺼내 입 속에 넣었다. 함께 보트에 오른 인도 청년 차터지(Chatterjee)에게도 하나를 건넸다. 그는 조금 의아해 하더니 입 속으로 넣어 맛을 보고는 오만상을 찌푸리며 뱉어냈다. 그리고 곧장 갠지스 강물로 입을 헹구고 또 헹구었다.



"이 강물 깨끗해요?"



그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을 했다. 그 후에 만난 바라나시 사람들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한결 같은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에서 더 이상 대답하고 싶지 않다는 소리가 들렸다. 근심과 침묵이 함께 읽혔다. 결코 가벼워보이지 않는 표정들이었다.



보트에서 내려 다시 가트를 어슬렁거리다가 아주 독특한 차림새의 사두(힌두교 수행자)가 눈에 띄었다. 그는 가트에 쪼그리고 앉아 성수를 담는 항아리를 재를 묻혀 닦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를 관심있게 바라보다가 옆에 있던 차터지에게 물었다.



"누구에요?"


"사두. 하리드와르(Haridwar)에서 왔어요. 스승 만나러. 가서 사진을 담아도 될 거에요."



그는 갠지스강 상류의 힌두성지, 하리드와르에서 온 성자였다. 바라나시에서 3개월간 스승과 머무르다가 돌아간다고 했다. 나는 다가가 조심스럽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의 얼굴은 종양으로 덮여 있었는데, 힌두신 중에 코끼리 얼굴을 가진 가네쉬(가네샤) 신의 모습이었다. 나는 그의 옆에 앉아서 몇 장의 사진을 담을 수 있었다. 그는 항아리를 다 닦은 후, 가트로 올라와 커다란 벽화 앞에 다시 쪼그리고 앉았다. 오후 시간에 그를 다시 찾아가 보았다. 그의 스승은 벽화 아래에 누워 잠이 들었고, 그는 소똥을 피워둔 곳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쬐고 있었다. 바라나시든, 인도 네팔 어디서든, 먼저 다가와 사진에 담기고 포토머니를 받아가는 분장한 사두(힌두교 수행자)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그는 인도 여행 중 만난 유일한 진짜 사두였다. 그곳 사람들은 그를 바바지(존경하는 아버지, 스승을 부르는 보편적인 호칭)라 불렀다. 어떠한 이유로 생긴 종양인지는 모르겠지만, 평생을 저 모습으로 수행하고 살아간다니 놀랍기도 하고 존경스러웠다. 그래서 더 신의 삶에 가깝게 살고 있는걸까? 걸으면 걸을수록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귀한 존재들로 가득 차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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