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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Mayfeng Jun 05. 2018

수트를 파는 노인

쥴리 메이펑의 사진이 된 순간들 #026


JORDAN. Karak. Arabian man selling suits. ⓒ Julie Mayfeng





요르단 카락. 2010.



그 때 나는 카락(Karak)을 여행 중이었다. 카락은 요르단 중부의 요새도시로, 페트라(Petra)와 와디럼(Wadi Rum)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른 곳이었다. 원래는 이스라엘을 한 달간 머물 계획이었으나 값비싼 물가에 일정을 축소하고 요르단으로 넘어갔다.


팔레스타인(Palestine)의 나사렛(Nazareth)에는 매일 출발하는 암만(Amman)행 버스가 있었다. 아침에 출발하면 오후 한두시 쯤에 수도에 닿았다. 암만에 머물면서는 하루는 제라쉬(Jerash)로 하루는 마다바(Madaba)로 여행을 다녀왔다. 요르단 여행은 순전히 즉흥적이었는데, 그래서 더 스릴이 넘쳤다. 전혀 알 수 없는 장소와 순간들이 내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한국의 작업실에 앉아 떠올리는 먼 나라는 막상 떠나려하면 두려움이 앞서곤 했지만, 이스라엘에서 떠올리는 요르단은 그냥 옆 집으로 놀러간다는 느낌에 불과했다. 암만의 일정을 모두 끝낸 후에는 완전히 짐을 싸 카락으로 향했다.


카락에서는 주로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십자군이 세운 요새를 둘러본 후엔 별 달리 할만한 것이 없기도 했고, 어딜가나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람 사는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의 길이기도 했다.


나는 이 수트 가게를 보자마자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의 웃는 얼굴에서 친할아버지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이미 지나쳐 와버렸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나는 다시 용기를 내서 노인 앞으로 갔다. 눈빛으로 인사가 오갔고, 정성스럽게 셔터를 눌렀다. 단 한 번.


나중에 이 사진을 보면서 수트의 단추들이 하나같이 부서져 있는 걸 알았다. 누가 입던 옷이었을까? 얼마나 오랫동안 걸려 있었을까? 수트는 팔렸을까? 저 옷도 누군가에겐 날개가 되겠지? 때론 사진 한 장에 여러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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