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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Mayfeng May 13. 2018

앙티브의 아침

쥴리 메이펑의 사진이 된 순간들 #025

FRANCE.  Antibes. Morning.ⓒ Julie Mayfeng





프랑스 앙티브. 2014.



앙티브 해안가의 피카소 미술관*에 갔던 날이다. 미술관으로 들어가다가 건물과 건물 사이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보게 되었다. 지중해의 수평선과 밝음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그날 아침 풍경은 키리코*의 그림 같았다. 나는 종종 이러한 이미지들 앞에 자주 멈춘다. 그럴 때마다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방학 때가 되면 남해안의 할머니 댁에 보내졌다. 그리고 거의 유배생활을 하다시피 했다. 시골의 삶은 초등학생이던 내게는 따분하고 무료할 수 밖에 없었다. 그곳엔 친구도 없었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논으로 바다로 일을 가시면 나는 오직 자연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텅 비어있는 공간을 견디며 방학숙제인 탐구생활 실험을 하거나 오후 다섯 시가 되어야 나오는 TV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기억 너머의 향수 때문인지 나는 이런 장면들 앞에 저절로 멈춘다. 그것은 말로 설명되지는 않으나 특정한 음악을 들을 때 사로잡히는 감정과 비슷하다.




*피카소 미술관: 17세기 이곳은 그리말디 가문의 성(Chateau Grimaldi)이었는데, 1925년 앙티브 시에서 구입하면서 고고학 박물관이 되고, 그 후에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가 이곳에 6개월간 머물며 작업을 했다. 피카소는 상당수의 작품을 기증했고, 후에 앙티브 시가 피카소에게 이곳을 헌정하면서 공식적으로 피카소 미술관이 되었다.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1888-1978) : 그리스 출신의 이탈리아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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