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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lie Mayfeng Jun 29. 2017

사진, 그 긴 여정의 시작

쥴리 메이펑의 사진이 된 순간들 #프롤로그 1





학창 시절 나는 프랑스 문화에 심취해 있었다.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프랑스인 펜팔 친구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와 파트리샤 카스(Patricia Kaas)를 듣고 따라 불렀다. 불문학도를 꿈꾸며 일생의 한번쯤은 프랑스에서 살아보리라 생각했다. "돈을 벌면 인도에 가고 싶어."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냐고 물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나는 당장 프랑스가 있는 유럽이 더 가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외국어와 음악을 좋아했던 나는 자연스레 다른 나라들이 궁금했고, '뚜르드몽드', '월드트래블' 등의 여행 잡지와 다양한 여행 다큐들을 보며 여행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 그 꿈은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부터 조금씩 실현시킬 수 있었다. 중국을 시작으로 북미, 일본,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포함해 만 3년 동안 20개국을 돌아다녔다. 당시 C사에서 나온 손바닥만한 디지털 카메라가 나의 분신이었다.





아스완의 나일강. EGYPT. Aswan. 2006.  ⓒ Julie Mayfeng






혼자서,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공상을 나는 몇 번씩이나 해보았었다.
그리하여 나는 겸허하게 아니 남루하게 살아보았으면 싶었다.
- 장 그르니에 <섬> 중에서






2006년에는 지중해를 여행했다. 어느 포탈 사이트에서 주최한 여행 공모전에서 대상을 타게 된 것이 계기였다. 나는 장 그르니에(Jean Grenier)의 <섬>을 읽으며 지중해를 꿈꾸고 있었다. 여행은 3주의 일정으로 그리스와 이집트, 터키까지 돌아보는 단체 배낭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때 많은 것들을 생애 처음으로 경험했다. 활자로만 접하던 지중해와 나일강, 사하라 사막을 건넜고, 룩소르 왕가의 골짜기에 새 무덤이 발견되는 역사의 현장을 보기도 했다. 나는 매 순간 매료되어 수없이 셔터를 눌렀다.






눈 내리는 이스탄불. TURKEY. Istanbul. 2006.  ⓒ Julie Mayfeng






그 지중해 여행에서 좋아하는 프랑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의 유작전을 만났다. 눈이 펑펑 내리던 이스탄불의 페라 뮤지엄에서였다. 나는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의 사진들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고, 그의 '결정적 순간'을 담은 사진에는 내가 담고 싶어하는 찰나의 그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그 중에서도 그가 인도에서 촬영한 '하리 파르발 언덕에서 기도하는 무슬림 여성들' 사진은 내게 감동 이상의 여운을 남겼다. 비록 길지 않은 여정이었지만 나의 시야는 이전보다 넓어졌고 사진을 대하는 마음 또한 달라졌다.






INDIA. Kashmir. Srinagar. 1948. ⓒ Henri Cartier-Bresson







이제는 내 사진을 찍어야 할 때



지중해에서 돌아와 글을 썼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루에 열 편씩 연재글을 올렸다. 자료를 찾고, 글을 쓰고, 사진을 편집하며 보낸 시간이 꼬박 2개월. 연재가 끝나자 유명 출판사들에서 출간 제의가 들어왔다. P 출판사와 계약했고, 집중하기 위해 집을 떠나 고시원에서 지냈다. 집필은 생각만큼 순조롭지 않았는데 중간에 편집자가 바뀌어 더 혼란스럽기도 했다. 고도의 정신력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첫 책 <지중해 in Blue>가 나왔다.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지만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다. 물론 그 마저도 내게는 소중한 역사가 되었지만.



출간 후엔 잡지 기고와 사진일들이 이어졌다. 가까스로 독립도 하고, 국내외 매체들로부터 촬영 의뢰를 받아 작업도 했다. 틈틈이 여행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사진으로 밥을 먹고 살게 되었지만, 갈수록 나는 목이 말랐다. 이제는 '내 사진을 찍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썼던 배낭을 꺼내고 떠날 계획을 세웠다. 인도, 쿠바, 모로코, 카보베르데 등의 나라들이 물망에 올랐다. 이제는 또 다른 미지의 장소들, 그 중에서도 시간의 냄새가 가득 밴 나라들이 궁금했다. 사진으로 담고 싶은 곳들은 더이상 이십대 초반에 꿈꾸던 낭만적인 장소들이 아니었다.






INDIA. Kolkata. Monsoon. 2009. ⓒ Julie Mayfeng





2009년, 인도와 네팔로 떠나며 본격적인 사진작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내 사진의 시작이 그 때부터였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진은 감성적인 작업이다. 연필을 든다고 글이 바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듯 카메라를 든다고 사진이 바로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고 사진이 시작되지 않는 것도 아니며, 특정한 카메라를 들어야만 시작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내게 사진은 똑딱이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하던 때부터 아니 어쩌면 그 이전, 카메라를 들기 전부터 시작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길을 떠난지 어느덧 16년째다. 낯설고 새로운 환경은 나를 움직이게 한다. 때로 고된 길이지만 길 위에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내가 된다. 평소의 내 삶은 정적인 삶에 가깝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 나는 이 시간들을 '숨을 참는 시간들'이라 부른다. 그러다 사진을 위해 여행을 떠날 때면 그제서야 제대로 숨을 쉬고 있다고 느낀다. 세상은 친구가 되어주고 안부를 물어준다. 소망이 있다면 이 길을 잘 걸어 가보고 싶다. 내가 찾는 것은 특종이 아니다. 평범하지만 아름다운 순간 혹은 삶의 신비 그런 것들이다.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 삶의 마지막에 누를 셔터가 궁금하다.







The artist’s job is not to succumb to despair
but to find an antidote for the emptiness of existence.
예술가의 임무는 절망에 굴복하지 않고
존재의 공허함에 대한 해독제를 찾는거에요.
- 거트루드 스타인(Gertrude 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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