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이성적 사유

by 풍뎅이


어린 시절 나는 시골의 작은 교회를 다녔다. 교회를 다니면서 나를 괴롭힌 것은 신의 존재 여부였다. 곰곰이 생각해 봐도 신은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어린 마음에 불경하게 느껴졌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왠지 꺼림칙했다.


대학을 들어가 인문학과 사회과학 등을 접하면서 신의 존재는 나에게서 더 멀어졌다. '종교는 아편이다'라고 역설했던 마르크스의 주장과, '종교는 집단적 망상'이라고 말했던 프로이트의 생각이 타당하게 느껴졌다. 오로지 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해석했던 중세의 세계관을 뒤엎으며 '신은 죽었다'며 목소리를 높였던 니체의 사상도 좋았다.


결혼하고 난 뒤에는 가뭄에 콩 나듯 교회를 다녔다. 교회 다니기를 원하는 노모의 성화가 컸다. 아이들도 주일학교에 보냈다. 그러나 막상 예배시간에는 목사님의 설교가 깊게 와닿지는 않았다.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발을 딛지 않고 허공에 떠있는 기분이었다. 이후 종교는 나에게 언젠가는 해결해야 할 숙제 같은 것이 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종교와 관련된 책뿐만 아니라 물리, 생물 같은 세상의 근원을 탐구해 가는 서적으로 눈이 갔다. 그러나 아직도 풀리지 않는 과제로 남았다. 현대 과학 역시 우주의 근원을 이해하는 데까지는 지적 영역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종교를 믿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이성'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면 이성 역시 신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성은 인간이 신에게 다가서는 걸 주저하게 만든다. 맹목적으로 신을 믿을 수도 있겠지만 이성은 납득되지 않는 영역에 대해 의문을 가지라고 소리친다.


인간의 이성은 과학을 통해 지평을 넓혀왔다. 케플러, 갈릴레오, 뉴턴 등이 근대 과학의 골조를 세웠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하이젠베르크의 '양자역학'이라는 외벽을 입히며 과학은 눈부신 발전을 이어갔다. 다들 과학적이다라는 말은 합리적이다라는 말의 다름 아닌 것으로 이해했다. 누군가의 생각이나 주장이 타당한지 여부도 과학적이냐 아니냐로 구분 지었다. 과학이 이런 힘을 발휘하는 기저에는 실험과 검증을 기초로 하기 때문이다. 이성은 승리했고, 결국 시간의 문제지 과학이 종교를 밀어낼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종교는 과학이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21세기에도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등장한 현대사회에서도 종교는 인간의 삶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면 종교는 사라질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무색해졌다. 종교학자들은 신의 존재 여부는 과학이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과학의 영역과 종교의 영역은 엄연히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정 부분 타당성이 있는 얘기라 생각한다. 인간의 이성은 우리 존재의 범위 안에서 판단과 사유할 수 있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성은 인간의 감각체계 안에서만 가동된다. 인간은 지구라는 작은 행성 위에서 이제 우주를 탐험하고 존재의 근원을 찾아가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아직 걸음마 단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운이 좋으면 언젠가는 그 여정의 목적을 달성할지도 모르겠다.


밤하늘을 바라보면 수많은 별들이 반짝인다. 오랜 세월 동안 헤아릴 수 없는 항성과 행성이 이 우주 공간에서 명멸했다. 우주는 존재 그 자체로도 신비롭다. 그래서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그 공백을 신이 메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순 가까운 세월을 살다 보니 신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비이성적이라거나 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스피노자나 아인슈타인의 생각처럼 인간의 이성이 미치지 않는 우주 저 너머의 신비로움이 종교(신)라면 신은 존재한다는 것에 나 또한 동의한다. 그리고 이 우주는 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이성과 지성의 영역에서 알 수 없는 그 뭔가도 존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겸허한 마음으로 삼라만상의 이 세계를 대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종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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