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관한 雜想

by 풍뎅이

술을 처음 마셔본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다. 아버지 막걸리 심부름을 하다 술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살짝 마셔봤다. 요즘 막걸리보다 단맛이 적고 좀 더 시큼했던 맛. 나쁘지 않은 묘한 매력이 있었던 걸로 기억된다.


본격적인 술의 세계로 접어들게 된 것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다. 신입생 환영회 때 치렀던 거창한 막걸리 사발식. '막걸리 찬가'에 맞춰 짬뽕 그릇에 찰랑찰랑 넘치던 막걸리 한 사발을 단박에 들이켰다. 적잖은 양의 술을 한 번에 꾸역꾸역 집어넣고 나면 다들 화장실로 직행하기 일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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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체질에 따라 호불호가 갈라진다고 하는 데 나는 술이 잘 맞는 편이었다. 80년대 대학가는 술 마시기 좋은 환경이었다. 3저 호황으로 취업이 쉬워 지금처럼 공부에 매진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시대도 암울했다. 술 마실 핑계는 항상 널려 있었다. 하숙집도 술을 마실 건수가 많이 생기는 곳이었다. 좋은 일, 슬픈 일... 하숙생들과 술을 마실 이유는 넘쳐났다. 대학과 대학원까지 6년 동안 열심히 마셨다.


군 복무를 시작한 뒤에는 진정한 술의 낙원이 펼쳐졌다. 강릉 비행장에서 근무를 했는데 바다가 코앞이었다. 바다는 술을 부르기 마련이다. 퇴근하면 곧바로 경포대 바닷가 횟집에 모여 술을 마셨다. 오로지 자연산뿐인 가자미, 오징어회와 함께... 술은 강원도 대표 술인 경월이다. 경월은 강릉에 생산공장을 두고 었었다. 서울에서 마셨던 달달한 진로에 비하면 경월은 진정한 술이었다. 광부들이 삼겹살과 함께 목구멍의 탄가루를 씻어낸다는 바로 그 술이다. 횟집에서 한차례 마시고 나면 경포대에 즐비한 카페로 자리를 옮겨 우아하게 맥주로 입가심을 했다. 이런 일상이 반복됐다. 술자리 중심에는 부서장인 중령 한 분이 계셨다. 이분은 전투기 조종사라 비행수당, 위험수당 등 이것저것 해서 적잖은 월급을 받았는데 후배들 술 사는데 대부분 썼다. 애주가인 데다 싱글이었으니 구속할 요인이 적었다. 그렇게 술과 함께 군 시절 3년을 보냈다.


직장은 아예 술판이었다. 점심이나 저녁, 모든 식사 자리에는 술이 거하게 돌았다. 술은 펜과 잘 어울린다는 어쭙잖은 하류 문화도 일조했다.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은 매번 고역을 치렀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부서를 중심으로 저녁을 같이 먹고 노래방 가는 일이 많았다. 부서 회식이 없는 날에는 취재원을 만나 술을 마셨다. 술에 또 술... 새벽 1,2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출입처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경우도 많았는데 출입처에 따라 술 문화 차이가 있었다. 검찰과 건설사는 유독 술에 관대했다. 폭탄주가 돌고 또 돌았다. 그때는 지금처럼 소주와 맥주를 섞는 것이 아니라 양주와 맥주를 잔에 가득 채웠다. 낮술에 취한 검사장이 주요 정보를 기자에게 누설했고, 모 신문에 '조폐공사 파업유도'라는 기사가 대문짝만 하게 실리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검찰에 낮술 금지령이 내려졌지만 관성이 하루아침에 멈추기는 어려운 법이다. 건설사는 사나이들의 술 문화가 강한 곳이다. 이른바 '노가다 문화'라는 것이 기저에 있어 직원들도 술을 마시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이런 술 문화는 2016년 김영란법 이후 그나마 많이 잦아들었다. 취재원들과의 술자리 횟수도 많이 줄었다. 또 젊은 세대들이 입사하면서 음주문화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젊은 친구들은 음식에 걸맞은 페어링 수준의 술을 좋아한다. 그냥 목구멍으로 술을 퍼붓던 구세대의 문화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술에 장사가 없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 나이가 들면서 술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 머릿속에서는 젊은 시절 마시던 술잔 수를 생각하며 호기롭게 덤비지만 몸이 감당하는 술 허용치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소프트웨어와 하드 웨어의 괴리가 생긴다. 당혹해지는 순간이다. '내가 왜 이러지?'


막걸리, 소주, 위스키, 정종, 포도주, 백주 등 술의 종류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술은 인류의 문명과 함께 발전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최초의 술은 포도주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이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자연에서 발효된 포도송이를 맛보다 술을 발견했을 가능성이 크다. 포도주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고려 시대로 충렬왕이 원나라 세조가 보낸 와인을 마셨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백성들은 와인을 접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진로에서 만든 무늬만 포도주인 술이 상점에 많았다. 과실주라기보다는 화학주에 가까운 술이다. 지금은 전 세계 와인 생산지에서 들어온 온갖 종류의 와인들을 쉽게 맛볼 수 있다. 와인은 맛도 좋고 빛깔도 아름답다. 가격별로 촘촘히 구분해 둬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어느 정도 돈을 지불한 와인이 더 맛이 좋다. 대체로 일정한 가격대까지는 품질과 가격이 정비례한다.


술은 인간의 삶에 빼놓기 힘든 친구다. 희로애락을 감당해야 하는 인간에게 영혼의 동반자 같은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마시는 와인 한 잔은 그 무엇과도 바꾸기 어려운 선물 같은 것이다.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술에 대해 남긴 글이 있다.

"젊은이에게는 사랑을, 늙은이에게는 추억을, 슬픈 일이 있을 때는 위로를, 기쁜 일이 있을 때는 축복을, 좌절한 자에게는 희망을, 죽은 자에게는 명복을... "


술은 분명 우리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이다. 다만 과유불급이다. 그런데 술꾼들이 그것을 조절하기가 만만치 않아 문제가 생긴다. 술을 오래 마시며 인생을 마감하는 것은 행복이다. 이를 위해서는 절제가 필수다. 건강에도 더 신경 써야 한다. 매일 근력운동을 하고 수영 같은 유산소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한다. 술을 마시는 빈도와 양도 줄여야 한다. 주종도 이왕이면 와인 같은 과실주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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