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게 공허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스스로 의지와는 무관하게 이 세상에 던져질 때부터 삶은 고독하고 힘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를 두고 '인간은 피투적 존재'라는 함축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나는 인간의 삶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인간은 그런 삶의 무의미함을 못 견뎌하는 존재다. 그래서 의미 없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다. 우리의 고뇌와 삶의 고통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알타미라 동굴의 한 귀퉁이에 흔적을 남겼고, 거친 파피루스와 대나무를 깎아 역사와 문학을 기록했다. 인간의 삶은 실존적이지만 역설적으로 그 실존을 토대로 한 이야기는 허구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지나온 지금, 내 삶에서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가 있다. 나의 머릿속에 각인된 기억들인지 아니면 촘촘히 시간의 공란을 채워갔던 내 삶의 짧은 흔적들인지...
과학자들은 이 세상은 소리도 색깔도 냄새도 없으며 오로지 물질과 에너지로 가득 찬 곳이라 한다. 그것이 맞다면 내가 생존한다는 것도 결국은 '에너지의 이동이나 분배'의 문제로 환원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작은 뇌를 통해 세상을 해석하고 오감을 느끼는 것이며 그렇게 진화해 왔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세상의 실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멋대가리 없고 무미건조한 곳일 수도 있다.
실재와 허상의 간극을 내가 알 길이 없지만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때로는 기뻐하고 슬퍼하며 삶을 살아간다. 빗소리에 어린 시절 단잠에서 깨어나던 기억을 떠올리고, 우연히 들어선 시장 모퉁이의 식당에서 새 나오는 음식 냄새에 과거의 추억을 되새긴다. 우리의 기억과 추억이 한정된 감각체계의 산물이라 하더라도 인간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삶의 깊이를 만들어 낸다. 그것이 설령 허상이라 할지라도...
드물긴 하지만 삶이 때로는 나를 성숙시킨다는 느낌을 줄 때도 있다. 그렇지만 돌이켜 보면 언제나 제자리에 되돌아가고 다시 그 길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인지... 내 삶을 내가 관장한다지만 내 주체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모호하기 짝이 없을 때도 있다. 그래서 때로는 살아가며 주체와 객체가 혼란스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