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흥미로운 이론이 있다. 스웨덴의 철학자 닉 보스트롬이 지난 2003년 발표한 논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당신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속에 살고 있지 않는가?"
시뮬레이션 이론의 핵심은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면 현실과 구별하기 힘든 가상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지금부터 10,000년의 세월이 흐른 서기 12,000년, 그동안 인류는 엄청난 과학 기술의 진보를 일궈냈다고 상상해 보자. 그 시기를 살고 있는 우리 후손 가운데 누군가가 재미로 서기 2000년대에 지구에 살고 있는 그들 조상의 캐릭터를 만들어 컴퓨터의 가상공간 속에서 일정한 규칙에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그 가상세계 속에 있는 캐릭터들은 자신이 프로그래밍된 가상의 인물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인간은 뇌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한다. 뇌를 통해 빛을 감지하고 사랑을 느끼며,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는다. 우리 후손들이 만든 캐릭터가 뇌처럼 세상을 그렇게 인식하도록 프로그래밍해뒀다면 우리는 설령 디지털 가상 세계 속에 있더라도 여전히 스스로를 실재하는 현실의 나로 인식할 것이다.
"이 세상의 실재는 무엇인가? 나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 시뮬레이션 이론은 바로 인간이 가지는 근원적 궁금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테슬라 창업주 일런 머스크 같은 사람은 우리가 실재하는 현실 세계에 살아갈 확률은 100만 분의 1도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현재의 우리 인간은 프로그래밍된 가상 세계 속에 살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머스크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다빈치의 모나리자 진품은 단 한 장이지만 복제본은 수백만, 수천만 장을 똑같이 찍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작위로 한 장을 선택했을 때 진품일 가능성보다는 복제본일 가능성이 높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어진 가상 우주도 마찬가지다. 실재하는 우주는 하나지만, 가상 우주는 이론상 무한대에 가깝게 복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우주가 우리 후손이 만든 수많은 우주 복제품 가운데 하나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반박이 쉽지 않다.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나로서는 시뮬레이션 이론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굳이 하나를 선택하라면 타당성이 높은 이론이라는 생각이다. 나는 방대한 우주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작은 공간에서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메모리 칩은 작지만 그 속에 담긴 가상의 공간은 무한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쨌든 결론은 쉽지 않고 당분간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로 남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