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면서 생기는 긍정적 변화 가운데 하나는 我(나)와 非我 의 관계에 대한 재정립이다. 젊은 시절 '제 잘난 맛'에 살았지만 나이테가 더 할수록 내가 세상의 도움 속에 지금 여기까지 왔구나라고 느낄 때가 많다. 말하자면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에 대해 예전보다 감사하는 마음이 많이 들게 된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이 박제된 경구가 아니라 실제 삶에서도 깊이 와닿는다.
사람들은 흔히 큰 병마를 겪고 나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무래도 죽음의 문턱까지 다가서 보니 병에서 회복한 뒤에는 사소한 일상이 예전보다는 훨씬 값지게 느낄 것이다. 병마를 겪지 않더라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세상은 온통 감사할 일이 널려 있다.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들풀과 나무, 작은 곤충들도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지만 이제는 친근한 생의 동반자로 느껴진다. 나는 그것을 단지 뒤늦게 깨달았을 뿐... 나의 하루하루의 삶은 다른 생명체의 죽음과 희생을 기반으로 이어간다. 인간은 먹이 사슬의 정점에 있으며, 전형적인 기생하는(parasitic) 생명체다.
어쨌든 이제 나잇값을 하는 것일까? 하루하루의 일상이 나에게는 감사한 일이다. 이런 새로운 관조는 삶에 대한 기대치가 그다지 높지 않은 데도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지만, 기대가 크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별로 없다.
이제는 이른 새벽 눈을 떴을 때 나에게 온전한 하루가 주어짐에 감사한다. 가족이 모여 함께 즐거운 식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커피를 한잔하고 책상에 앉아 조용히 책장을 펼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수영장의 물살을 가르며 평온하게 릴랙스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한낮의 고요함과 나른함을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한다. 저녁을 먹고 동네를 산책하며 시간의 흐름을 느낄 기회가 있음에 감사한다.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음에 감사한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 교정에는 '큰 나의 밝힘'이라는 글이 새겨진 비(碑)가 있다.
모교 교장 선생님으로 부임했던 청마 유치환 선생님이 쓰신 것이다.
"나는 나의 힘으로 생겨난 내가 아니다. 나란 나만으로서 있을 수 있는 내가 아니다. 나란 나만에 속한 내가 아니다."
나이가 드니 참으로 가슴에 와닿는 내용이다.
나는 비아를 통해 규정되며, 세상은 관계를 기반으로 설정된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입자성, 비결정성, 관계성과도 일맥 상통한다.
지금도 잠깐 시간을 틈내 잡문을 끄적일 수 있음에 감사한다. 죽는 그날까지 공부하고, 운동하고, 감사하는 일.. 남은 삶의 감사한 과제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