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학창 시절 <가요무대>에서나 가끔씩 듣던 노래. 그냥 고리타분한 옛노래라 치부하며 귓등으로 듣던 노래. 이 노래가 이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어느 틈엔가 가슴을 잔잔히 울리며 다가온다. 인생도 노래도 어울리는 때가 있는 모양이다.
'봄날은 간다'는 원곡가수 백설희 선생을 비롯해 여러 가수 버전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장사익 선생의 노래가 가장 좋다. 노래가 힘이 있으면서도 섬세함이 살아있다. 강하면서도 약하고, 약하면서도 강하다. 강과 약이 조화를 이룬다. 눈을 감고 노래를 들으면 노랫말이 아름다운 영상으로 그려진다. 대부분의 노랫말이 그렇듯이 좋은 글은 회화적이다.
누구에게나 봄날은 있다. 다만 그 시절이 길지 않았다고 생각할 뿐... 이 노래도 그런 감성을 담았다. 삶의 덧없음과 무상함은 인간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숙명 같은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화양연화, 자신의 봄날을 회상하며 힘든 삶을 위로받으려 한다. 그러나 과거가 현재를 위로하기는 힘들다.
노년의 슬픔은 젊은 시절의 그것과는 다르다. 특히 지난 삶을 회상하며 젖어드는 슬픔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나이가 들면 과거의 기억을 한 번씩 끄집어내기 마련이다. 먼지 묻은 LP판 같은 것이다. LP판을 꺼내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다 한들 음악은 끝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 슬픈 일이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나이가 들어보니 봄날은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 커피를 마시며 향을 즐기는 바로 이 순간이 봄날이다. 봄날은 열아홉 그 시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연륜에 맞는 노래가 있듯 제 나이에 맞는 봄날은 언제나 있는 법이다. 매일매일 우리는 봄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