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안성기 씨가 74세 일기로 영면했다. 얼마 전 작고한 이순재 씨 등과 함께 영화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과 위로를 안겨준 배우였다. 그는 <고래사냥> <태백산맥> <투캅스>등 많은 작품에 출연했는데, 나는 박중훈 씨와 호흡했던 <라디오스타>에 나온 그의 배역이 좋았다.
우리는 지구라는 공간에서 많은 사람, 많은 생명체와 어우러져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음악가, 화가, 영화배우, 정치인도 있고 나무와 새, 꽃과 풀 같은 동식물도 있다. 138억 년에 달하는 기나긴 우주의 시간에서 100년도 채 안 되는 찰나 같은 순간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나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만 내가 그들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나와 함께 하는 제한된 시간 속에 오로지 우연에 의해 선택됐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각자의 의지에 따라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이 내 뜻대로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타인의 선택과 삶은 내 삶 속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어느 시대 그 누군가에게는 태어나고 보니 그의 곁에 플라톤이나 모차르트, 괴테가 있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히틀러나 모택동이 곁에 있기도 했다. 축복이기도 하고 재앙이기도 하다. 그 누군가는 아무런 잘못이 없지만 그의 삶은 타인에 의해 송두리째 바뀌기도 한다.
길지 않은 인생을 좋은 사람들과 평온하게 지내는 것은 선물 같은 것이다. 뛰어난 예술가가 넘쳐나는 시대와 미치광이 전쟁광과 함께 살아가는 시대를 비교하기 힘들다. 역사가 발전하면서 인간의 집단지성이 힘을 발휘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항상 순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국민배우라 불릴 만큼 주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쳤던 안성기 씨와 동시대를 살았던 것은 행운이다. 그래서 그의 이른 죽음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누구나 때가 되면 삶을 마무리하는 게 순리지만 조금 더 우리 곁에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안식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