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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Jan 13. 2024

쓴다는 행위의 의미

글은 영혼을 위한 메스


한동안 심한 감정기복에 시달렸다. 워낙 예민한 성격 탓에 작은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나쁜 습관을 반복하고, 육체와 정신을 스스로 헐뜯고 괴롭히고 망가뜨렸다. 어디에서든 머리만 붙이면 잘 자던 내가 새벽까지 잠을 못 이루고 알람 소리를 듣기도 전에 일어나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기 바빴다. 무엇이든 잘 먹었지만 식욕이 없어 저녁을 간식으로 대충 때우는 날도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내가 죽기를 바라며 숨통을 쥐고 멱살을 흔드는 느낌에 도저히 이대로는 못 살겠다는 본능적인 판단이 내려졌다. 광기도 전염된다고 했던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가족들에게까지 화가 미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피부로 느껴지는 진득한 찝찝함과 불쾌함에 펜을 들고 일단 글을 써내려갔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왜 고통받고 있는가?'


글쓰기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했다. 고통의 원인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원인을 알아야 한다. 원인을 안다고 해서 무조건 적절한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경로 정도는 설정할 수 있으리라는 어렴풋한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살아가는 데에 있어 생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생각만으로는 풀 수 없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생각과 이상으로는 뜯어고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게다가 애초에 뜯어고친다는 방법론적인 적용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영역도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 안에서 절망하며 반복되는 자아성찰과 반성마저도 어떤 벽 앞에서는 기계적인 공정에 그칠 뿐이었다. 결국 복잡한 사념의 찌꺼기와 부정적 감정 에너지만 남았는데, 그것은 결코 자동적으로 사라지거나 없어지지 않았다. 어떻게든 긁어내고 뱉어 치워야 했고, 그 방식은 언제 어디서나 손쉽고 간편하시행할 수 있고 혼자서도 능히 해낼 수 있는 형태여야 했다. 글은 렇게 스트레스를 배출하기 위한 적절한 단으로서 기능하며 카타르시스 통한 치유를 선사했다.




이번 달부터 새롭게 쓰기 시작한 글이 하나 있다. 바로 감정일기이다. 연필로 쓰던 일기장은 쓰다 말다를 반복하게 됐기에 매일 보게 되는 스마트폰에 일기장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플레이스토어에서 아기자기한 감성의 일기 앱을 하나 골랐다. 아무래도 마음을 끌어당기는 맛이 있어야 자주 보고 쓸 것 같아서였다. 그날의 기분을 감정 아이콘으로 표현고, 그날 있었던 일이나 감정의 동선들을 더듬으며 세세하게 기록을 남긴다. 무엇이든 일단 보면 내가 했던 생각을 알게 되고, 관찰자적 입장에서 생각을 바라보게 된다. 생각뿐만 아니라 자기 존재와 인간과 관계에 대해 새롭게 인지하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무의식을 도려내고, 째고, 꿰매마치 셀프로 수술을 진행하는 느낌이랄까. 머리 속 생각이라는 것에 얼마나 많은 오점과 허점과 죄악과 결함과 오류가 있는지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인간은 우주의 먼지 한 톨, 점 한 개에 불과 존재라는데 불완전한 형상에 뭐가 이렇게나 많이 들었는지. 아직 쓸만한 것도 있고, 정리정돈해야할 것도 있고, 버려야할 것도 있다. 특히 감정의 쓰레기는 매일 비워도 또다시 채워진다. 무슨 할당량이라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이토록 감정적이었는지, 남들보다 내 이 더 다루기 까탈스럽고 버겁게만 느껴져 좌절했다. 그러나 하는 수 없다. 이렇게 생겨먹었음을 순순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매일 부단히 애쓰는 수밖에.


세상에는 알고리즘과 메커니즘을 명확히 규명하기 어려운 일들도 있지만, 시련과 역경에는 어떤 숨은 메시지가 있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예민한 기질 그 자체였다. 제로는 그렇게 심각한 문제가 아닐지라도 그것을 판단하고 느끼는 주관적인 심리와 생각 문제 키울 때도 종종 있었다. 작은 것 하나 하나에도 마음을 지나치게 쏟아부으며 쉽게 기진맥진해기도 했다. 그럼에도 글은 등산하는 이의 지팡이처럼 지친 마음을 미약하게나마 지지해준다. 매 순간에 적절한 단어와 표현을 고르고, 문장을 만들고 다듬으며 상황과 맥락을 파악하 과정은 안정을 준.  쓰고 못 쓰고는 중요하지 않다. 서투르고 짤막하고 미숙하더라도 매일 쓰고, 꾸준히 기록을 남겨두는 행위는 돼지 저금통 속 동전처럼 차곡차곡 쌓여 나만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무엇이든 좋으니 쓰는 데에 의의를 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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