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개념과 정의는 무엇일까? 사전을 보니 '만 19세 이상인 사람', '다 자라서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책임이란 무엇인가? '맡아서 행하지 않으면 안되는 임무, 자신의 행동에 대한 모든 결과를 부담하는 것'이란다. 모두가 자신이 고른 선택지로부터 파생되는 모든 가짓수의 엔딩을 품을 수 있을까? 어쩐지 막막하고 막중한 일이다. 다시 어른의 논의에 대해 돌아가보니, 재미있게도결혼을 한 사람이라는 뜻도 포함된다고 한다. 종합해보면나라는 존재를 스스로 챙기고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이 곧 어른이라고 볼 수 있겠다.옛날에는 결혼을 해야 비로소 책임감을 갖게 되어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제법 일리가 있다.오늘날에는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와 함께 생활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이러한 경향을 찾아보기 쉬운데, 에 대해 옳다 그르다 말할 수 없지만 가족 간에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다보면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여 잘못된 의존과 정서적 교착을 야기할 수 있다.또한 자녀 입장에서는 장성했음에도 불구하고따뜻한 밥 한 끼에 드는 수고와머무르고 눈을 붙일 수 있는 집이라는 공간의 소중함을당연시여기게 될 수도 있다.부모 자녀 간에 건강한 분리와 느슨한 결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직접 자기가정을 꾸리기 전까지는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을 제대로 느끼고 알기 어렵다고 생각한다.직업을 갖고,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능히 해내는 것으로 어른의 요건이 충족된다면 좋겠지만제대로 된 어른으로 홀로 서는 데에는 많은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자기 본연의 가치를 알고, 능력과 한계를 알고, 가족및타인의 영역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줄 알고,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태가 바로 참된 독립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명의 성인이 된다는 것은 성숙한 인간이자 사회 구성원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다. 그래서 가끔사회에서는스무살이면 성인으로 승격(?)된다는 점이 가혹한 일처럼 느껴진다. 그 시기는갓 세상으로 내보내져실제적으로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일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기 때문에 만면에 서툴러 실수도 자주 하지만, 걸음마를 내딛는 단계임을 암묵적으로 용납받기에 그 시절만이 가지는 생기 어린반짝임이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스스로에게 관대해야할 지점이 한정 되어 있음을 알게 되며, 그 영역의 범위도 점점 축소되게 된다.부러 나이를 자각하지 않으려는 시도는 사실 자신의 존재 가치와 본질을 외면하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일이다. 나는 모 교육 업체의 캐치프레이즈처럼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하면서 자랐다. 모두가 저 할 일로 바쁜 집안에서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야지' 라는 책임감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있었다.학생 때는 종종 애늙은이라는 소리도 들었지만 불쾌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혼자 있을 때면 외롭고 힘든 때도 많았지만 결국 인고의 시간을 버티고 지나보내며 추억으로 메워나갔더랬다. 어린 시절에 느꼈던 책임이란 땀방울과 눈물을 뒤로 감춘 채 주먹을 쥐고 웃어보일 줄 아는 일이었다.
우습게도 그 책임이란 것 때문에지금은 홀로 있을 때보다 공동체 생활이 더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 혼자 지내면 내 몫의 고통만 감당하면 되고 누군가의 것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어서인 것 같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고독은 제법 즐길 줄 알게 되었고, 눈 앞의 것들에 악착같이 매달리던 혈기왕성한 의지와팔다리의 근육들은 천천히 무뎌져가고 있다.사람은 단순히 나이라는 수치만으로 측정하고 판단 가능한존재가 아닐 뿐더러 얼마든지 바뀔 수도, 변할 수도 있다. 하여튼 손 많이 가고 연약한데 질긴 생물임에는 틀림없다.
성장기의 어린 아이들은 발육하는 과정에서 몸에 통증을 느낀다고 한다. 뼈마디와 골격이 커지고 길어지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수반되는 모양이다. 이러한 성장통이라는 것은 성인들에게도정신적으로 발현될 수 있는 것 같다. 사람의 마음은 익숙하지 않은 것과 겪어보지 않은 것에 대해 자동적으로 불편함을 느낀다. 미지를 두려워하는 인간의 본성 탓이다. 그런데 이러한 고통의 에너지가 다른 방향과 목적지로 움직일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도 한다. 통증이 없었다면 혹여나 발 밑의 지반이 무너지고 있더라도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무르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내게 주어진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시간도, 건강도 예전처럼 풍부하고 느긋하게만 지니고 있을 수가 없다. 한번 소실되고 나면 회복도 점점 힘들어진다. 그러다보니 달면 삼키고 쓰면 처음부터 삼키기를 주저하고 꺼리게 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나에게 가장 버거운 것은 공부도, 타인도, 일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나이들어가는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었다. 매일 마주 앉아 밥을 먹고, 같은 레퍼토리를 가진 대화를 반복하고, 얼굴을 마주하는 행위에 숨이 막혔다. 힘들다는 것의 개념적 범위가 예전보다 좁혀져 있었던 것이다. 육체적 노화의 영향이나 선천적인 체력의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는 정신이 노쇠해가는 것 같았다. 육체는 운동으로 지킬 수 있지만 정신은 무슨 수로 젊음을 유지시킨단 말인가. 열정과 애착이 없고, 생을 대하는 자세가 무미건조하고 싸늘한 것이 곧 노쇠하여 사망에 이르는 것이다. 그런 태도가 부끄러운 한편 모든 것을 그저 훌훌 내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사소한 일상적 규범이어그러진다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언제까지고 비좁은 생각의 굴레에 스스로를 방임해둘 수는 없었다. 아직 내게는 재능과 힘이, 젊음이 남아있었다.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힘쓰고 지식과 앎을 나눠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알던 것들은 잊혀지고 땀 흘려가며 갈고 닦은 기술의 흔적도 몸에서 희미해진다. 사람은 생각보다 더 쉽고 빠르게 어리석어질 수 있다.직접 부딪히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들도 있음을, 노고를 통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음을,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이 구분지어져 있음을인지하고 이해할 수 없는 날도 있다. 잘할 수 있는 것과 취약한 것을 헷갈리더라도 다만계속해서 1인분의 몫을 해야 한다. 어떤 순간에도 몸뚱이를 붙들고 추슬러 움직임을 만들어야 한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국가에서의 역할을 알고 수행하며 사는 것. 그것이 인간이라는 이름이 지닌 책임의 무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