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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Dec 10. 2021

등 뒤의 프라이버시

2021년 12월 10일, 백스물일곱 번째

사생활,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비밀스러운 것, 다른 이에게 드러나지 않는 것

타인으로부터 거리를 둘 때 유지되는 공간

가족도 타인으로 배제되는 공간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공간


만원버스나 출근길 지하철에 몸을 욱여넣으면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다. 책을 읽는 사람, 드라마를 보는 사람, 인스타를 돌려보거나 옷가지를 고르는 사람, 졸음에 겨운 사람…….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보는지 본다. 특히 누군가의 뒤에서 우리는 그들의 시선을 훔친다.

시선은 신체에서 아마 목소리와 표정 다음으로 공적인 특징일 것이다. 인간은 영장류 중에서도 흰자위가 가장 큰 동물이다. 우리는 단지 시선을 옮기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정신을 드러내고 타인의 정신과 만날 수 있다. 시선은 그 자체로 메시지가 되기 때문이다.

매체가 발달하기 전까지,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이처럼 무너지기 전까지, 눈에서 드러나는 것은 단지 시선뿐이었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는 그것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드러내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은 여러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상상할 때에만 추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팽창함에 따라 이제는 타인이 무엇을 보는지를 자세히 관찰할 수 있게 됐다.

나아가, 과거에 타인의 시선은 그의 정면에서만 관찰할 수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앞에 두었을 때, 나의 시선이 그에게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그의 뒤에서 그가 보는 것을 자세히 관찰한다. 가장 사적인 공간일 사유의 공간이 타인에게 조금씩 관찰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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