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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Jul 01. 2022

드럼, 재즈, 인정

인정이 탁월함을 만든다

나는 드럼을 배웠다. 오래는 아니고 아주 잠깐. 중학생 때였는데, 어느 여름방학, 학교에서 아주 싼 값에 선생님 한 분을 불러줬다. 내 형편에 드럼처럼 돈 많이 드는 악기를 배우기에는 절호의 기회였다. 나와 형편이 비슷했던 네 명의 친구가 함께 했던 걸로 기억한다. 8주 동안 배웠는데, 모두 다 까먹어서, 이제는 차라리 칠 줄 모른다고 하는 편이 맞다.


나는 늘 그렇듯이, 할 줄 아는 것보다는 그냥 아는 것만 많던 아이여서, 드럼이 어떤 악기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드럼 좋은 노래에 푹 빠져 있었다. 예를 들면 마이클 잭슨의 빌리 진이 그랬다. 빌리 진을 어찌나 많이 들었는지, 그 앞부분의 드럼소리만 듣고도 그 노래를 알아맞출 지경이었다.


어느날 선생님께서 노래 맞추기 게임을 하자고 하셨다. 아마도 8비트라는 개념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던 것 같은데, 때마침 트셨던 노래가 빌리 진이었다. 나는 당연히 한 마디가 채 끝나기도 전에 알아맞췄고, 선생님께서는 깜짝 놀라셨다. 치는 데는 별볼일없던 아이가 이 노래를 안단 말이야? 딱 이런 모습이었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는데 굉장히 칭찬해주셨던 것 같다. 왜냐면 너무 뿌듯했으니까. 정말 뿌듯해서, 나는 그 경험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는 그날 그 공간 안에 있었던 다섯 명 중에 최고였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다. 그 칭찬 이후로 나는 드럼을 사랑하게 됐다. 노래를 들으면 드럼부터 들린다. 들으면서, 아, 이 드러머는 이때 이런 기분으로 쳤겠구나 하며 듣는다. 고등학생 때에는 미디음악도 취미로 해보고, 밴드 하는 친구들과 합주하며 노래도 했다. 그 선생님의 인정으로 음악이라는 세계가, 특히 드럼을 중심으로, 내게 열렸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기술은 없지만 심미안은 일품인 드러머가 됐다.


그런데 나는 그 선생님께 잘못을 하나 했다. 선생님을 모욕한 것이다. 그 선생님은 재즈 드러머였는데 별로 유명하진 않으셨다. 한 번도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퀸텟에서 활동한다고 말해주셨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때 재즈를 몰랐다. 으레 별 생각 없는 애들이 그러하듯이, 나는 빈 소리로, 재즈 드럼이 뭐냐고 선생님께 물어봤다. 선생님은 앉은 자리에서 끝내주는 솔로를 들려주셨다. 물론 그때는 재즈를 몰랐으므로, 저게 뭔 소린가 싶었다. 방금 알려준 8비트 박자도 못 맞추는 것 같고 아무거나 막 치는 듯했다. 쿵짝쿵짝만 아는 아이가 칭치징치징의 아름다움이 뭔지 알았겠나.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에이, 그게 무슨 드럼이에요.


재즈를 처음 들은 건 대학교 2학년 겨울이었다. 연예인 연습생을 하던 동창을 우연히 길에서 만나 빌 에반스라는 아티스트를 알게 됐다. 어텀 리브스라는 노래였는데, 나는 그때 재즈에 푹 빠졌다. 재즈라기보다는 빌 에반스에 빠졌다고 해야겠다. 빌 에반스 트리오 말고는 들은 재즈가 거의 없다. 한창 빌에 빠져서 듣고 있는데 갑자기 선생님 생각이 났다. 아, 그 선생님 드럼도 이 드럼처럼 죽였던 것 같은데. 곧장 선생님 이름을 검색했다. 나오는 건 없었다. 선생님이 활동하던 퀸텟도 자취를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갑자기 선생님께 죄송스러워졌다.


그때 그 선생님의 나이와 지금 내 나이는 이제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이렇게 상상해본다. 재즈 아티스트로 이름을 날리고 싶었던 젊은 드러머의 고뇌를. 비록 중학교 방과후학교로 생활비를 벌고 있지만, 언젠가 내 연주를 들어줄 수많은 관객들을. 그런데 어린 놈 하나가 자존심을 긁은 거다. 에이, 그게 무슨 드럼이냐, 라고. 정말 별볼일없는 놈인데, 심지어 재즈가 뭔지도 모르는 놈인데, 자존심이 상한다. 아, 나는 음악을 왜 할까? 이 따위 음악.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드럼은 시끄럽다. 그래서 선생님은 음악을 그만둔 게 아닐까? 내가 지금 그 선생님의 연주를 찾을 수 없는 이유가, 다름아닌 바로 나 때문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 책임의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는 분명히 내가 져야 할 몫일 것이다.


인정이라는 게 참 묘해서, 고래를 춤추게 할 수도 있다. 사람을 고래만도 못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선생님의 인정 덕분에 나는 잘 듣는 드러머가 됐다. 그리고 어쩌면 나의 모욕 때문에, 선생님은 음악을 그만뒀을 수도 있다. 나는 드럼을 배웠다. 내게 드럼을 알려준 건 선생님, 더 정확히는 그 선생님의 인정이었다. 나는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더 탁월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나는 말을 조심하려 한다. 오래가 아니라 아주 잠깐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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