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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Jan 07. 2017

지적 문맹 (Intelligent illiteracy)

2017년 1월 6일, 마흔다섯 번째

   지난 몇 달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자괴감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바꾸어 말하기'다. 무슨 공부를 그리 열심히 했는지, 나는 어려운 말만 쓴다. 지적허영심이 너무 심하다. 아는 체하고 잘난 체한다. 그런데 쉬운 생각이 잘 안 떠오른다. 쉬운 말이나 쉬운 글로 푸는 일을 못한다. 이걸 문맹이 아니고서는 뭐라고 부르나. "거울을 보면 아이히만이 서있다(결국엔 또 이렇게 쓴다, 지적허영심)."


   내가 하는 생각, 내가 배운 지식 말고는 말을 꺼낼 수가 없다. 누구나 그렇지 않느냐고 묻겠지만, 내가 보기에 나는 '보통' 사람들이 '통상적으로는' 잘 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생각을 즐기고, '상식적이지 않은' 지식을 대화에 항상 넣는다. 사람들은 그런 '언어'가 무슨 재미냐고 묻는다. 그런데 나는 그게 참 재미있다.


   같은 것을 보아도 대화가 힘들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언제나 '나만 알고 있던 것'들을 강의하며 끝을 맺는다. 처음 몇 마디, 사람들은 이런 대화를 신선하게 여긴다. 오, 너 참 똑똑하구나. 그런데 몇 마디 더 쓰거나 말하면, 이렇게 말한다. 어려워, 그래, 너 똑똑해, 이해는 잘 안 되는데, 흥미롭네, 그러니까 그만.


   나는 위선자다. 결국엔 나도, 읽을 수 있는 글만 읽고 들을 수 있는 말만 들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읽히지 않는 글을 쓰고 들리지 않는 말만 한다. 뇌리에 꽂혀야 비로소 존재를 인정받는 법인데, 뇌는 커녕 눈과 귀도 뚫지 못했으니 사라질 수밖에. 내 글과 내 말은 그렇게 사람들에게서 잊혀진다. 어쩌면, 잊혀져야만 한다.


   말이든 글이든 쉽게 하고 싶다. 아는 게 나와도 입을 다물든지, 아니면 정말 빼어난 말주변이나 글솜씨로 '정상적인 대화'에 '비정상적으로 깊은 생각'을 살짝 가미하든지, 둘 중 한 길밖에 없다. 그런데 후자가 너무 어렵다. 어떻게 하려고 해도 과하다. 남은 길은 하나. 그래서 꽤나 오랜 기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대체 언제 잘 읽히는 글을 쓰게 될까.


   내가 읽지 못하는 글은 내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누구나 보고 싶은 것만 본다. 듣고 싶은 것만 들린다.


   어떤 이는 내 손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간다.


   나는 문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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