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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영 Feb 28. 2017

고독한 새벽, 외로운 오후

2017년 2월 28일, 마흔여섯 번째

 백수생활이 오랜만이다. 대학 입시를 끝낸 이후로 처음 맞는 무료함이다. 입학을 기다리던 것과 마찬가지로 끝이 정해진 무료함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설레는 입학이 아니라 아쉬운 군복무라는 점이 다르다. 봄이라기보다 가을이다.


지난 12월 중순부터였다. 두어달 남짓 이어온 백수생활은 신선했다. 생계 걱정 없는 신세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을 자유를 주었다. 오히려 무슨 일을 시작해봐야 군복무와 함께 흐지부지 흩어질 터. 철저히 아무 일도 하지 않기로 단단히 마음 먹었다. 책도 글도 놓았다.


변화가 찾아왔다. 새벽 시간을 음미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 홀로 깨어있다는 사실은 내게 고독을 가르쳤다. 만족스럽다. 외로움은 누군가로 인해 놓이는 것이고 고독은 스스로 놓는 것이라는, 친한 형의 말을 떠올린다. 이 정적 위에서 무슨 일을 할까. 뱃속이 간지럽다.


다만 부작용이 크다. 수면량 보존의 법칙이 있는지, 해가 중천에서 기울 무렵에야 눈을 뜬다. 물론, 이 때 아니면 언제 늦잠을 자 보겠냐는 부모님의 배려 덕분이지만. 그렇게 아무도 없는 집에서 홀로 첫 식사를 준비한다.


정말 아무도, 없다. 유투브나 텔레비전을 틀지 않고서는 배길 수 없는 적막이 흐른다. 모두가 할 일이 있다. 도로 위를 흐르는 물결은 제각기 목적지가 있다. 나는 어디로 흐르고 있나.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은 내게 무얼 원할까. 할 일은 존재의 이유가 되는데. 외로움은 적막 위에 나를 내몬다.


다시 눕는다. 졸리면 잠에 든다. 잠에 들면 가족이 온다. 차라리 잠에 들자. 그런데 우스운 사실이 하나 있다. 가족이 오면 나는 대강 문안을 올리고 방문을 닫는다. 고독도 외로움도 아닌 공간으로, 나는 놓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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