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영화 사이에서
베를린 국제영화제(베를리날레)의 포스터와 로고 디자인은 단순한 시각 홍보물이 아니라, 냉전 이후 유럽 문화정치와 도시 브랜딩 전략이 교차하는 시각 담론의 장으로 기능해 왔다. 1951년 처음으로 개최된 이후 베를리날레의 디자인은 영화 매체 자체의 은유에서 출발해, 도시 상징체계, 그리고 최근에는 디지털 플랫폼 경험 디자인으로 확장되는 변화를 보여준다.
초기 베를리날레 포스터는 영화 자체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그래픽 실험에 가까웠다. 1950~60년대 포스터는 필름 스트립, 인물 실루엣, 포토콜라주 등을 활용한 시각적 은유가 중심이었으며, 이는 당시 영화제가 자유주의 문화정치의 쇼케이스라는 성격과 맞물려 있었다. 초기 포스터는 그래픽 아티스트 폴커 노트(Volker Noth) 등의 작업을 중심으로 제작되었으며, 영화 매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실험적인 디자인이 주류였다.
1970년대 이후 디자인 정체성은 ‘곰’이라는 단일 상징으로 통일된다. 곰은 베를린 도시 문장에서 유래한 상징으로, 베를리날레에서는 'Golden Bear' 수상 체계와 결합되며 영화제 브랜드의 주요 시각 언어가 되었다. 이후 수십 년간 포스터는 곰을 그래픽, 사진, 일러스트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하면서도 도시 정체성과 영화제 권위를 동시에 표현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도시 속 곰’이라는 내러티브 구조가 등장한다. 특히 2010년대 중반 이후 포스터는 실제 도시 공간 속에 곰을 배치하는 사진 기반 키비주얼을 활용했다. 예를 들어 Velvet 크리에이티브 오피스 에이전시가 제작한 포스터는 곰을 베를린 지하철이나 브란덴부르크문과 결합해 도시 경험 자체를 영화제 이미지로 확장했다. 이 시기 베를리날레 디자인은 영화제를 도시 문화 생태계의 일부로 재정의하는 전략과 연결된다.
2020년대 들어 디자인은 감정적 커뮤니케이션과 커뮤니티 담론으로 이동한다. 2024년 키비주얼에서 곰은 ‘열린 교류의 장소’라는 영화제 정체성을 상징하는 친근한 존재로 설정되었다. 이는 영화제가 산업 행사이면서 동시에 관객과 영화인의 만남의 플랫폼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전략이었다. 또한 2025년은 디자인적으로 중요한 전환점인데, 75주년 포스터에서 베를리날레는 전통적인 곰 이미지를 제거하고 바우하우스적 추상 디자인을 도입했다. 동시에 최초로 애니메이션 키비주얼이 도입되었으며, 이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환경에서 정지 이미지보다 모션 그래픽이 중요해졌음을 반영한다. 디자인 콘셉트 역시 ‘시간’을 중심으로 영화 역사와 현재를 연결하는 서사 구조를 구축했다.
2026년 2월 12일에 개최될 이번 베를리날레에서는 곰이 다시 디자인 중심으로 복귀한다. 그러나 단순히 전통적으로 회귀한 것이 아니라, 밝은 색채와 움직임을 강조한 디지털 친화적인 이미지로 재해석된 형태이다. 곰은 여전히 영화제의 핵심 상징이지만, 이제는 고정된 로고가 아니라 미디어 환경에 따라 변형 가능한 시스템적 아이덴티티로 작동한다. 이러한 변화는 베를리날레가 더 이상 단순한 영화 상영 플랫폼이 아니라, 도시 경험, 산업 네트워크, 그리고 디지털 문화 플랫폼이 결합된 복합적 문화 장치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초기에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를 상징하는 그래픽 실험이 중심이었다면, 이후에는 도시 브랜드로서의 상징체계가 구축되었고, 최근에는 네트워크형 미디어 경험 디자인으로 확장된 것이다. 이처럼 베를리날레 디자인의 역사는 단순한 그래픽 스타일의 변화가 아니다. 그보다 영화제라는 제도가 어떤 방식으로 도시, 정치, 미디어 기술과 관계 맺어왔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시각 문화사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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